
북한의 ‘관심 돌리기’ 전략
요즘 언론들의 북한 관련 기사들을 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지난 11월 18일, <화성-17형> 시험발사 당시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는 더 극성이다. 27일, 김정은이 화성-17형 발사 성공에 기여한 성원들과 기념촬영할 때 또 다시 대동한 그의 친딸(둘째), 김주애에게 온통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언론들의 장단을 맞추며 ‘김주애 후계설’까지 거론하는 전문가들도 있고 기사들도 거의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기 후계자 되나? 김정은 딸 또 공개석상 동행”, “김정은 딸, 리설주와 똑 닮은 스타일로 꾸며” 등으로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뽑고 있다. 덩달아 외신들도 김주애가 북한의 차기 후계자가 될지 여부를 전망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학자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개탄스럽기만 하다. 필자와 같은 심정을 가진 한 기자는 “新 물망초 전략 먹혔나. 세계의 관심 미사일보다 ‘김정은 딸’에 쏠렸다.”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올렸는데, 여기서 ‘물망초 전략’은 관심끌기 전략을 빗댄 표현이다. 하지만 단지 관심 끌기 뿐이겠는가. ICBM에 대한 관심을 ‘김주애로의 관심 돌리기’, ‘환기시키기 전략’이 먹혀든 것이 아니겠는가. 눈에 보이는 뻔한 북한의 전략임에도 너무나 쉽게 농락당하고 있다. 농락 당하는 건지, 선동차원인지는 더 따져볼 일이다.
치열한 ‘김주애 알기’ 경쟁
이번에 북한이 대량살상 핵무기 <화성-17형>을 발사했다는 것, 또 성공했다는 자체는 매우 심각한 일이고 위협수준이 극에 치달았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이 아니라면 바로 UN제재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비록 중·러에 막혀 UN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국내에서는 당연히 화성-17형 발사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고, 국가차원에서의 대중적 안보결집을 해야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ICBM 규탄은 뒤로 하고 김정은 딸의 등장에 대한 의미부여하기에 급급하다. 한 언론사가 김주애의 첫 등장시에는 ‘사랑하는 자제분’이었는데, 두 번째 등장에는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북한 매체가 바꿔 불렀다고 하면서 후계자설을 내놓으면서 대다수 언론사가 그 뒤꽁무니가 쫓고 있다. 급기야는 구글 검색에서 ICBM(화성-17형)보다 김주애의 검색량이 앞서고 말았다. 이 얼마나 기이한 현상인가. 북한이 노린 전략대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화성-17형>을 발사하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과 비판여론을 잠재우려는 방안 마련에 궁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의 친딸 김주애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들의 예상대로 국제사회는 몰라도 남한 땅에서는 온통 ‘김주애 알기’ 경쟁이 치열하다. 언론이 부추기고 정부는 나 몰라라 방관하고 있다.
‘김주애’를 전면에 등장시킨 이유
김정은이 11월 27일,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11.19)에 기여한 붉은기중대 전투원들과 ‘국방과학연구기관의 일군들, 과학자, 기술자들, 군수공장 노동계급들과 기념사진을 찍었고 관련사진이 노동신문에 15장이나 실렸는데, 특이점은 사진 모두에 김정은의 둘째 딸인 김주애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지난 19일 화성-17형 시험 발사 당시에도 김정은은 딸을 대동시켰고 당시도 노동신문은 김주애가 나온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다.
북한이 김정은의 딸을 전면에 등장시킨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분석들을 내놓았지만, 관련 노동신문 정론(11.20) 및 관련 기사들을 볼 때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핵무기가 북한 인민들의 행복(존엄)과 후대(새세대)들의 ‘환한 웃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서다. 김정은의 딸은 그 후대의 대표주자로 등장한 것이다.
둘째는, 북한의 핵무기가 ‘전쟁 억제력’ 강화 측면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북한은 <화성-17형>을 최강의 핵병기로 평가하며 핵 타격능력이 강할수록 핵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크다고 했다. 또한, 화성-17형은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자산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패턴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국제사회가 북한의 입장을 잘 알고 있기에 북한은 뭔가 강하게 어필할 만한 새로운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김정은의 딸을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앞세우는 것 만큼 핵 억제력 수단임을 어필하기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위험천만한 대량살상무기를 장난감을 보듯 마냥 웃고 있는 김정은의 딸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만일, 김정은의 딸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면 선전효과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천연덕스러운 어린 소녀의 모습을 통해 공포의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적인 느낌을 상쇄시킨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의 친딸을 전면에 등장시켜 화성-17형 탄도미사일이 핵억제력 수단임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의 친딸, 김주애를 내세운 것일까? 만일 일반 다른 소녀를 내세우는 거랑 무슨 큰 차이가 있는가? 여기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북한이 최강의 핵병기인 <화성-17형> 개발은 ‘핵전쟁 억제력’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실행용이라기보다 하나의 위협수단용에 가깝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데, 만일 일반 다른 소녀를 등장시키면 여기에 대해 별로 의미부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친딸이 등장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르긴 몰라도 김정은은 이러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독하고 모질어도 사랑하는 딸을 죽음으로 치닫게 하겠느냐. 핵을 사용하면 모두가 파멸이다. 그 파멸의 구덩이에 내 딸을 빠트릴 수 있겠느냐. 내 딸을 위해서라도 나는 핵무기를 매우 신중하게 다룰 것이다”
‘적대적 구호’와 ‘김주애’ 배치, 강온전략 구사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할 때, 김정은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라는 가장 강력하고 적대적인 구호를 내세우며 강공드라이브를 걸었다. 동시에 친딸을 내세우면서 전쟁 억제력 강화라는 측면을 강하게 어필했다. 한 마디로 강온전략을 동시에 펼친 것이다.
그 연장선상으로 김정은은 이번에 다시 그의 딸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지난달 27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성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여기에도 김주애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살벌한 군인들과 어린 소녀를 동시배치한 상쇄전략이라 할 수 있다. 김주애의 이번 등장은 후대들의 대표주자로, 또한 살벌한 대량살상무기를 상쇄시키는 하나의 상징존재로, 그리고 핵 전쟁억제력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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