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끝나가는데 시장 곡물값은 오르는 ‘아이러니’…왜?

허풍방지법 처벌 피하려 시장 곡물 사들여…전문가 "수매에 대한 통제 강화가 영향 줬을 수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자각을 안고 다음 해 농사 차비를 착실히 하자”고 촉구했다. 사진은 황해북도 황주군에서 가을갈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현재 추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달 들어 북한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최근에 제정한 ‘허풍방지법’이 시장 물가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데일리NK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북한 시장 물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쌀 1kg이 북한돈 6150원에 거래됐다. 지난 9월 이후 5000대로 내려왔던 쌀 가격이 다시 6000대로 오른 것이다.

지난 13일 평양의 쌀 가격은 5900원으로 간신히 5000원대를 유지했지만, 평양, 신의주, 혜산 등 주요 3개 대도시의 쌀가격 평균은 6000원을 넘어섰다.

보통 벼 추수가 본격화되고 감자, 옥수수 등 가을걷이가 끝난 작물이 시장에 나올 때 곡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올해는 9월 이후 곡물 가격이 소폭 하락하는 듯하더니 11월이 되자 다시 상승하는 모양새다. 실제 코로나 봉쇄 전인 2019년은 물론이고 2020년과 2021년에도 11월에는 곡물가가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13일 기준 평양에서는 옥수수(강냉이) 1kg 가격도 3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10월 말과 비교할 때 2주 만에 9%가 상승한 셈이다.

식량 가격 상승률은 지방 소도시나 농촌의 경우 더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지역의 협동농장들이 시장에서 쌀과 강냉이를 사들이고 있고, 부업지를 할당받아 생산물 계획분을 내야 하는 기업소들도 곡물을 사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취재 결과 이들 단위는 최근 제정된 ‘허풍방지법’과 관련한 처벌을 피하려 부랴부랴 곡물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농업 생산량에 대한 허위 보고 및 수확량 빼돌리기를 막기 위해 ‘허풍방지법’을 제정하고 가을걷이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전국 농업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보고량과 실제 생산량을 검열하고 있다. 허풍방지법이 제정된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시범적 검열이기 때문에 이번에 걸리면 중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6월과 추수가 시작되기 직전 상부에 보고한 예상 수확량이 실제 생산량과 같아야만 책임자들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게 내부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 본보는 최근 황해남도 재룡군과 안악군의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 올해 수확량을 허위 보고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되고 혁명화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농장 관리일꾼 허위 보고로 ‘혁명화’ 처벌…허풍방지법 적용?)

다만 문제는 허풍방지법으로 인해 각 단위에서 시장의 곡물을 사들이고 있고, 이에 따라 시장 물가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허풍방지법은 기관별로 할당된 수매 목표량을 최대한 달성하고, 생산량 취합에 있어서 국가가 통제를 강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며 “북한 경제는 계획과 시장으로 이원화돼 있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를 강화할수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공급량이 줄어들고 시장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 연구위원은 “북한 쌀가격은 통상적으로 추수기인 4분기에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하락폭이 크지 않다”며 “국가가 허풍방지법을 명목으로 수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시장 쌀 가격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허풍방지법이 쌀값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단정짓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가 유휴 생산량을 최소화하고 계획대로 많은 양의 곡물을 수매해 국가식량판매소를 통해 시장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민들에게 공급할 경우 곡물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허풍방지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판가름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인은 올해 ‘총생산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 연구위원은 “계획과 시장은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기도 하기 때문에 계획량이 충분히 달성되면 시정도 안정화될 수 있지만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통제가 강화되면 시장에 공급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