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훈련소 산하 백도라지 농장을 둘러싼 ‘암투’, 그 결말은…

[북한 비화] 권력기관 간부들 얽힌 아편 생산 기지…결국 지배인 공개처형으로 사건 종결

함경북도 청진 라남제약공장에서 생산하는 아편가루. /사진=데일리NK

2020년 10월의 어느 날, 함경남도 영광군의 북한군 제108훈련소 후방부 산하 백도라지 농장 밖에 기관총과 자동보총 등으로 중무장을 한 30여 명의 한 개 소대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당시 농장 안에서는 농장 지배인에 대한 공개처형이 집행 중이었다. 그는 농장의 생산물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운 죄로 본인이 일하던 농장에서, 숱한 종업원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의 시작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보위성에는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국경경비여단 보위부로부터 긴급한 사건 자료가 하나 올라왔다. 이는 의주군 해안국경초소 보위지도원 김모 씨가 올려보낸 자료였다.

여기에는 의주군 압록강 중간에서 중국 보트와 접선해 물건을 넘기는 보트 한 척을 단속해 수색한 결과 아편 20kg을 넘기고 받은 거액의 달러가 든 가방이 나왔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중국 측에 아편을 넘기고 돈을 사람은 108훈련소 후방부 산하 백도라지 농장의 판매과장이었고, 그가 타고 있던 보트는 백도라지 농장이 자체로 구입해 국방성 후방총국의 허가를 받아 부업용 선박으로 등록한 기관 보트였다.

사건 자료에는 아편을 밀수했다는 자백 내용과 손 지장이 찍힌 자필 진술서와 함께 농장 판매과장이 국경경비여단 보위부에 체포된 지 3시간 만에 군 보위국 수사국의 책임 간부로부터 직접 전화가 내려와 심상치 않아 긴급히 사안을 보고한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군 보위국을 늘 견제해오고 있던 국가보위성은 이 사건을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직접 보고했고, 이후 당 조직지도부와 국가보위성이 합동 검열을 진행해도 좋다는 비준이 떨어져 즉시 108훈련소 산하 백도라지 농장에 대한 검열에 착수했다.

이 농장은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농장으로, 백도라지를 심어 자력갱생으로 고려약재(북한식 한약재)를 생산한다는 미명하에 암묵적으로 국가의 승인을 받아 아편을 재배하는 곳이었다.

아편 재배·가공의 오랜 역사로 최상품의 아편을 생산하는 이 농장의 명성은 자자했고, 군 보위국 수뇌부에서도 이곳에서 난 생산물에 눈독을 들였다. 이에 군 보위국은 농장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직접 나서서 검열하거나 뒷거래로 무마시키며 특별 관리해왔다.

이후 자연스럽게 군 보위국과 농장 간의 유착관계가 깊어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농장은 물자 조달이나 배급을 풀기 위해 생산물을 중국에 넘겨주고 식량이나 필요한 물품을 받아왔는데, 군 보위국은 이런 행위에 대해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

국가보위성은 이런 농장에 손을 대면 군 보위국과 힘겨루기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당중앙의 비준을 받아 조직지도부와 합동 검열을 하는 식으로 나선 것이었다.

이후 이뤄진 검열 과정에서 국가보위성은 2014년 백도라지 농장이 108훈련소 소속에서 인민군 군의국 소속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욱이 농장이 군의국 약초농장으로 소속만 돼 있을 뿐 실제 군의국 일꾼들이 농장에 내려와도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삼엄하고 특별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도 파악했다.

그 핵심에는 군 보위국이 있었다. 그렇게 백도라지 농장은 사실상 군 보위국이 관리하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농장이 돼 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농장 지배인은 조용히 아편을 재배해 종업원들을 입단속 시키며 생산물을 밀수품이나 진상품으로 반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보위성은 이 모든 사안을 당에 보고했다. 다만 국가보위성은 군 보위국 간부들이 결탁돼 있다는 사실은 묻어 둔 채 모두 농장 지배인의 독단적인 결정과 횡령, 뒷거래로 처리해 사건을 종결지었다.

결국 이듬해인 2020년 10월 농장 지배인은 결국 공개처형을 당했다. 농장 당비서는 물론 이를 묵과한 종업원들과 가족 등 50여 명도 추방됐고 농장은 해체됐다.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뒤 국가보위성 내부에서는 당시 사건에 군 보위국은 물론 국가보위성과 중앙의 간부들까지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지배인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돌았다.

북한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비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며 마약 청결국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권력기관과 간부들이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일궈지고 발전해 온 약초농장들의 마약 밀수에 얽혀 저마다 이득을 취해왔다. 지금도 권력의 비호 아래 약초농장으로 둔갑한 백도라지 농장들이 운영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