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포커스] 9·9절 앞두고 사회주의 국가와 친선 강화 주력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북한 정권수립일(9·9절) 74주년을 앞두고 여맹중앙예술선전대공연 ‘인민의 내 나라 영원히 받들리’가 전날(7일) 여성회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남한보다 더 빠른 정부 형태를 갖춘 북한

9월 9일은 북한의 공화국 수립일이다. 북한은 1948년 9월 9일, 남한은 8월 15일이 정부수립일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북한보다 남한이 더 먼저 정부가 수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정부형태는 북한이 더 먼저 갖추었다. 과거 역사를 잠깐 반추해보면, 남북지역의 통일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1946년 3월 20일에 처음 열린 미소공동위원회는 1947년 9월, 유엔에 문제를 이관하기로 결정하고 10월에 중단되었다. 유엔총회에서는 11월 14일에 유엔 감독하에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김일성은 강력 반발하며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을 발표했다. 사령관에 오른 최용건은 취임사에서 ‘우리들의 수령 김일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김일성에게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수령’이라는 호칭이 불려지는 순간이었다. 군대까지 세워짐으로써 당·정·군 형태의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틀 후인 2월 10일에는 소련군정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헌법 초안을 발표까지 했다. 외형적으로 한 국가의 형태를 모두 갖추게 된 것이다.

한편, 유엔총회에서 유엔 감시하에 남북 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결정했지만, 소련과 북측의 완강한 거부에, 결국 1948년 2월 26일 열린 유엔 소총회에서는 선거가 가능한 남한지역에서만 5월 10일 단독으로 선거 실시가 결정되었다. 제주 4.3사건과 같은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5월 10일에 유엔감시 하에 남한의 단독 선거가 실시되었다.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 국가임을 내세우며 정부수립을 선포했다. 앞서, 북한은 7월 10일에 제헌헌법(인민민주주의헌법)을 기초해 선거를 실시할 것을 결정하였고 8월 25일에 선거가 실시되어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대로 정부의 형태는 북한이 더 먼저 갖추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1947년 2월, 행정부 기능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전국의 대의원의 선거(북조선인민회의)를 통해 출범했는데, 이때부터 하나의 정부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더 멀리는 1946년 2월 8일에 설치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정부의 형태로 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고 김일성이 실질적인 지도자로 군림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 정부때는 대한민국의 건국시기를 기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라고 하면서 북한정권 수립일은 남한보다 늦은 1948년 9월 9일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이승만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남북분단의 책임을 남한정부에 돌리기 위함이었다. 임시정부는 전혀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주지하는 바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최고인민회의 제7차 회의 1일 회의가 전날인 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사회주의 농촌 발전법과 원림녹화법이 채택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불참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

북한 정부 수립(9·9)일 앞두고 9월 7일, 최고인민회의(제14기 제7차)가 열렸는데, 첫째 날 상정된 토의 주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농촌발전법 채택함에 대하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림록화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였고 이 두 가지는 전원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정부수립과 관련해서는 아직 회의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9·8) 각국의 수반들이 축전을 보내왔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세이쉘공화국’, ‘모잠비끄’, ‘알제리’, ‘짐바브웨’, ‘꽁고’, ‘캄보쟈’, ‘세네갈’, ‘바레인’, ‘따쥐끼스탄’, ‘스위스’에서 보낸 축전내용들도 직접 실었다. 다른 나라 수반들도 그렇지만 스위스 대통령(인야찌오 까시스)이 축전을 보냈다는(9.6) 것에 독자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 지면에 그 내용을 전체를 옮겨와 봤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절에 즈음하여 당신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두 나라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신뢰관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세계적인 주요도전들을 함께 다루어나갈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께와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게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사실, 스위스의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행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김정은이 청소년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베른중학교)한 배경도 있겠지만 스위스 은행에 VIP 고객(비밀계좌)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스위스는 작년에도 축전을 보냈었고 국가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위스 국영방송의 단골 주제가 북한관련 이슈이며 대부분 스위스 국민들은 김일성 가계도를 꿰고 있을 정도이다. 이 같은 양상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문제는 북한에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작년에도 스위스 언론들은 북한의 정부수립일(9·9)을 기해 북한 건국절이라고 사진과 함께 선전식으로 방송을 했었다. 김정은을 독재자라고 쉽게 언급하면서 이렇게 관심 갖고 우호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할 뿐이다.

또 노동신문의 다른 기사에는 웰남(베트남) 특명전권대사가 김정은에게 꽃바구니를 주었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현재 북한 내 베트남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김정은은 9월 2일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베트남 독립 77주년 축전을 보낸바 있다. 그에 앞서 하루 전 북한이 베트남에게 식량원조를 타진했다는 관측이 나왔었고 지난달, 21에는 북한 남포항에 흰색 물체(포대)가 가득 적재돼 있었는데, 식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기도 했다. 북한이 식량난을 밝히며 식량원조를 직접 요청할 만큼 베트남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동지적 관계이다. 북한의 외무성은 북한은 소나무로, 베트남을 참대나무로 표현하기도 했다.

9월 8일 자 또 다른 노동신문기사에서는 <공화국창건 74돐 경축모임 여러 나라에서 진행>이라는 타이틀로 관련 내용들이 나오는데, 먼저 8월 30일, 31일에 윁남(베트남), 네팔, 벨라루씨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는 베트남에서 진행된 경축모임을 집중 다루며 연설들의 내용도 실었다. 윁남조선친선협회 위원장은 “호지명주석과 김일성동지께서 마련하시고 여러 세대 령도자들께서 가꾸어오신 윁남조선친선은 두 당, 두 나라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베트남과 북한의 관계는 상호적으로 매우 우호적 관계이다. 양국이 1950년 외교관계 수립이후 혈맹관계를 유지하다가 한국-베트남 수교이후(1992.12.22.) 관계가 소원해졌었지만, 2000년 들어 관계회복이 되면서 2019년 김정은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었다.

한편, 베트남은 남한과도 국교이후 2001년 ‘21세기 포괄적 동반자’관계에 이어 2009년에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확대했었고 2022년 새 정부들어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미국과 같은 수준이다. 현재 양국의 교역량은 국교수립 당시보다 161배 급중했으며 한국 총수출의 8.8%와 총수입의 3.9%를 베트남이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 중의 하나가 된 상태이다. 경제는 남한과, 정치(안보)는 북한과라는 ‘안북경남’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북한의 대 베트남 외교전이 매우 치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화국 수립일 기념 앞두고 외교전 총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이 시작되었다는 관측과 함께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우방국과의 연대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의 전쟁을 비호할 뿐만 아니라 노동력 지원 및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군사무기(포탄과 로켓)를 밀거래하고 있다. 러시아와 운명공동체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기술했던 베트남과는 김정은의 베트남 방문 3주년을 내세워 친선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에게는 베트남처럼 스스럼없이 식량원조를 요청했다. 북한에게는 식량원조 요청 또한 외교전이다. 양국간의 딜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남한과는 전혀 식량원조를 타진하지 않고 있다. 철저히 ‘봉남정책’으로 나간다. 새 정부가 제시한 ‘담대한 계획’에도 조소를 날릴 뿐이다.

하지만, 공화국 수립 기념일 전으로 사회주의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국제사회를 향해 핵 도발을 전혀 멈출 마음이 없는 김정은의 전략적 노림수이다. 또한, 제7차 핵 실험을 앞두고 우군을 확보하려는 단도리 작업으로도 보인다. 이러한 북한에 장단을 맞추는 나라들이 있는 한, 북한의 완전한 고립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고 우리의 당면과제인 북한 문제의 셈법은 더욱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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