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민들이 꼽은 열병식 키포인트는 ‘리설주’…본격 ‘어머니화’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인 지난 25일 저력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에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년 동안 열두 번째로 진행된 이번 열병식은 북한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에 대한 우상화와 핵보유국으로서 핵무력을 과시하는데 그 목적이 집중돼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참석한 평양 시민들과 이를 조직하는데 관여한 당 간부들은 이번 열병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북한 내부 주민들에게서 이번 열병식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리설주가 원수님보다 상단에 앉은 것 자체가 놀라워”

우선 25일 심야에 진행된 열병식에 동원된 평양 시민들의 관심은 단연 ‘리설주’였다. “리설주 여사가 원수님(김 위원장)보다 상단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상당히 놀라웠다”는 게 평양시민들의 얘기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조용원 당 조직비서 등도 리설주와 함께 상단 대열에 위치해 있었지만 리설주의 경우 김 위원장 머리 바로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카메라에 비춰졌다. 이에 한 평양시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자리에 리 여사가 앉은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김 위원장과 함께 흰 정장을 맞춰 입고 나온 리설주에게도 핀조명이 집중돼 리설주의 높아진 위상에 감탄한 주민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내부 취재를 종합해보면 북한 당국은 최근 리설주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대원수 계급장으로 추정되는 견장을 달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의 뒷편에는 부인 리설주 여사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당 중앙위원회는 리설주에 대한 사상 교양자료를 배포하면서 리설주 우상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 자료는 지난 2월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80주년을 계기로 작성됐으며, 리설주에 대해 ‘주체혁명의 대를 이으신’, ‘김정숙(김일성의 처) 어머님 그대로의 모습을 발현하고 계신’ 등의 미사여구가 덧붙여져 있다는 전언이다. 

이 가운데 ‘주체혁명의 대를 이었다’는 표현은 리설주가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앞서 지난 1월 음력설을 맞아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진행된 설 명절 경축 공연 당시 리설주가 한복을 입고 나온 것을 두고 ‘김정숙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북한에서 붉은색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는 김정숙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패션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한복 입고 등장한 리설주에 주민들 깜짝… ‘김정숙어머님화’ 의도?)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열병식으로 10년간의 김정은 우상화가 일단락 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보조적인 존재로서 리설주의 우상화도 필요한 때가 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우상화에서 두드러지는 최근 동향이 김정은을 아버지 원수님으로 부르는 등 어버이화 하는 것”라며 “김정은을 어버이로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리설주도 어머니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배우자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보다는 수령 우상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원수복 입고 나온 김정은 옆 박정천, 리병철의 흰색 예식 모자는 행사용 

김 위원장의 패션도 이번 열병식에서 이목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열병식에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하는 흰색 원수복을 입고 등장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흰색 원수복을 입고 행사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핵무력 강화’라는 김 위원장 집권 10년의 업적을 선대의 항일무장투쟁에 맞먹는 성과로 부각하기 위해 흰색 원수복을 착용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인 지난 25일 오후 9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원수복을 입고 거수경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양 옆에선 박정천(왼쪽)과 리병철(오른쪽)의 흰 모자는 북한군 정규 군복에 없는 행사용 모자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그러나 김 위원장 옆에 나란히 선 박정천과 리병철이 착용한 흰색 모자는 북한군의 정규 군복에 없는 행사용 모자라는 게 내부 군 소식통의 이야기다. 즉, 흰색 원수복을 입은 김 위원장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제작된 행사용 모자라는 것이다.

특히 핵·미사일 개발을 주도해온 리병철을 다시금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에 앉히고 군사를 지휘통제하는 박정천에게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부여함으로써 군 유대·국방력 강화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착용한 원수복의 견장이 ‘대원수’ 계급장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북한 군 내부에서 김 위원장이 ‘대원수’로 추대된 것으로 보이는 동향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25일 0시가 아니라 22시에 열병식 개최한 이유는? 

한편,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은 당초 이번 열병식을 25일 0시에 개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안비행장에서 예행 연습 중 공군 비행기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 행사 시작 시각을 부득이하게 25일 밤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열병식을 지연시킨 사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북한은 열병식을 오전 10시에 개최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민족 최대 경축 기간’(2월 16일~4월 25일)의 화룡점정을 위해 마지막 행사로 25일 심야에 열병식을 진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고위 소식통은 “열병식이 마지막 행사로 진행되면서 공화국의 무장력이 인민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더욱 부각됐다는 내부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