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문재인 ‘민방위복’과 김정은 ‘항공점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차 초급당비서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식수를 진행했다고 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번 기념식수는 2일 ‘식수절’을 맞아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항공점퍼’를 입고 구두를 신고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3월 2일 김정은의 모습은 한마디로 낯 뜨거웠다. 북한의 식목일 격인 식수절(3월 2일)에 김정은은 제2차 초급당비서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식수를 했다. 이 자리에 김정은은 선글라스에 항공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직접 나무를 옮기고 삽질까지 하면서 최고지도자가 손수 일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눈속임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영상에는 김정은이 여러 명과 함께 지렛대를 이용해 나무를 직접 옮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김정은이 손에 받쳐 든 지렛대는 나무를 지탱하는 게 아니라 살짝 걸쳐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교묘하게 연출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정장이 아닌 작업복처럼 항공 점퍼를 입고 나왔지만, 그가 신은 신발은 아연실색할 정도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색 정장 구두는 나무를 심는 행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기 때문이다.

인민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애민정치를 강조하며 최고지도자가 손수 인민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러한 장면은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쇼에 지나지 않는다. ‘온 나라의 수림화, 원림화’를 강조하며 산림 보호를 강조하지만 정작 북한 대부분 지역은 이미 민둥산이다. 북중 국경 1,400여km를 이동하면서 압록강 너머 북한 지역 산에서 나무를 찾아보기란 어려울 정도다. 그나마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다 베어 내고, 그 자리마다 목숨 하나 부지할 땅뙈기를 갈아엎었다. 나무를 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가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애민정치다.

한편, 김정은의 검은색 정장 구두를 보면서 또 하나의 국내 언론 보도가 오버랩되었다. 바로 문재인이 어제(3월 6일) 경북 울진 산불피해 현장을 방문한 모습이다. 김정은의 항공점퍼 차림과 같이 상의는 민방위복을 걸쳤다. 재난 현장 때마다 입고 언론에 비추어지는 노란색 점퍼다. 재난현장에서 국민과 함께하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가 신은 신발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정장 구두였다. 김정은의 구두처럼 산불피해 현장을 둘러보는 지도자의 신발로는 전혀 적합지 않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화마가 휩쓸고 간 삶의 터전 앞에 망연자실한 이재민을 위로한답시고 현장을 찾았지만 반짝반짝 윤이 나는 정장 구두는 오히려 이재민들에게 상실감만 키웠으리라. 기껏 잠시 잠깐 방문해 이재민의 손을 잡는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재앙이 온 나라를 덮치는데 정작 재앙의 당사자는 민방위 복 하나 걸치고 사진 찍기에 급급하다. 여당 대선 후보는 산불피해 이재민을 위로한다며 새벽에 현장을 찾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겨우 잠든 이재민들을 깨우고 사진 한 장 찍고는 돌아섰다는 피해자 가족의 절규도 들려온다. 대체 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재난만 발생하면 ‘민방위복’ 입고 잠시 들러 이재민과 악수하는 똑같은 구도의 사진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운동화 차림에 직접 현장을 누비는 그런 참된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재민 대피소를 둘러보는 그 순간에도 산불 진화 현장에서는 목숨을 건 소방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는 계속되었다. 산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재난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김정은의 ‘항공점퍼’와 문재인의 ‘민방위복’을 바라봐야 하는 남북한 주민들만 그저 불행할 따름이다. 왜 이토록 위선적이고 독재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는가. 지난 2018년 4월,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잡았던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검은색 정장 구두에 비견된다. 흙모래 가득한 작업 현장에, 목숨을 건 재난 현장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홀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그 구두 말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