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軍 보위국에 붙잡혀간 83호 병원장…싸늘한 주검돼…

[북한 비화] 2년간의 끈질긴 고문·협박에 생체실험 진실 숨기고 거짓 진술했지만 결국 독살

지난 2016년 군 보위국에 붙잡혀 간 83호 병원 병원장이 2년 간의 구금 끝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데일리NK

북한의 고위 간부들을 항시적 감시대상으로 삼고 있는 군(軍) 보위국(前 보위사령부)은 북한 내에서 무소불위의 존재로 여겨진다. 산하에 별도 영창관리대와 감호소를 두고 있으며, 기본적인 검열뿐만 아니라 문제 간부를 색출해 즉결 처리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2018년 10월 검은 천에 둘둘 말려 마대로 덮인 시신 한 구가 군 보위국 영창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주검으로 감옥에서 나온 이는 83호 1병원(현재 104호병원) 원장 백 씨(남, 당시 57세)였다.

북한 83호 병원은 공민권이 박탈된 수감자 중 몸이 아픈 환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생체실험을 진행하는 곳으로, 일명 83호 관리소로 불린다. 실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이곳을 관리소로 인식하고 있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유린 비판을 피하고자 병원으로 위장하고 있다.

집권 4년째가 되던 지난 2016년 10월 초 국가보위성 책임일꾼이 올린 ‘최근 83호 1병원과 원장에 대한 반당적 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든 김정은은 이 서류를 군 보위국장에게 넘겨주면서 군 보위국에 해당 사건 처리를 맡겼다.

당시 김정은은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가 핵무력 강화 사업으로 불철주야하고 있어 이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이 문제는 외부로 새어나가선 안 되는 문제라 김정은으로서는 국가보위성이나 인민보안성(現 사회안전성)보다 군 보위국에 맡기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병원장 백 씨의 죄명은 병원에 들어온 환자 관리를 잘못해 1년간 15명의 도주자가 발생하고, 그 도주자 가운데 3명이 혁명의 수도 평양시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사민인 친척들에게 병원 내부 비밀을 들먹여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물의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특히 백 씨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병원장의 책임 문제를 지적하는 보위기관에 “장군님(김정일) 때부터 병원에 있던 나만큼 이런 특수 비밀기관에 오래 있는 사람이 또 있느냐” “이런 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그 정도 일은 좀 눈감아 달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병원장 자리를 벼슬처럼 여기고,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였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다.

김정은의 위임에 따라 군 보위국은 백 씨에게 ‘위험분자’ 딱지를 붙이고 이튿날 밤 바로 그를 체포해 군 보위국 영창관리대에 가뒀다.

이후 백 씨에 대한 모진 고문이 시작됐다. 첫 1년간은 밤에 잠 안 재우기, 하루 10시간씩 본인의 경력 등을 수백 번 적어내기, 하루 2시간씩 철창에 허리 꺾고 서 있기 등의 고문이 이어졌다.

군 보위국 영창관리대 보위원들은 이런 혹독한 고문을 참아내는 백 씨에게 “일반 사람들은 이 정도면 벌써 머리가 돌거나 죽는데 생체실험을 하면서 좋은 것은 다 챙겨 먹었나 보다”라면서 비아냥거렸다.

이후 1년간은 그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기 위해 호스를 코에 넣고 하루 1시간씩 이상한 약물을 섞어 물고문을 가했다. 수십 번 까무러치고 정신을 잃기도 한 백 씨는 사는 게 더 고통이라며 보위원들에게 “죽여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 보위국 간부가 영창관리대에 시찰을 나왔다. 이 간부는 독방에 수용된 백 씨 앞에 서더니 “내일이면 다 결정 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 백 씨는 눈이 가려진 채 검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실내사형장이었다. 군 보위국은 유리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에 백 씨를 넣어 두고 처형되는 사형수들의 모습을 1시간 동안 지켜보게 한 뒤 그를 다시 원래의 감방으로 데려갔다.

이후 군 보위국은 백 씨에게 “그동안 일하던 곳에 대한 기억을 상기해 진실만을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잘 기억해서 쓰고 밖으로 나가야 할 것 아닌가”라는 말을 툭 내뱉었다. 그제야 백 씨는 이들이 원하는 진실이란 병원에서 조직적으로 생체실험이 이뤄졌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작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백 씨는 83호 병원은 정신병을 치료하는 일반 신경과 계통의 병원이라는 진술서를 쓰고 열 손가락 지장을 찍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일말의 희망을 품고 거짓된 내용을 진실이라 진술했지만, 결국 그는 군 보위국에 의해 독살됐다. 구금된 지 꼭 2년 만이었다.

선대 수령들의 지시에 따라 비밀 생체실험을 진행한 책임자의 비참한 최후는 어떤 충성심 있는 간부도 예외가 될 순 없다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의 쓴맛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