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줄곧 최고지도자의 인민사랑을 내세운 건축정치로 수도 평양을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시키는 데 집중했다. 평양에 새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었는데, 북한은 이를 내부 외화를 손쉽게 거둬들이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중구역 창전거리, 만수대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등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던 지난 2017년 김정은은 모란봉구역 흥부동의 호안다락식 주택이 절반 이상 비어있음을 알고 국가기관 주도로 내적인 경매를 추진하게 했다. 일반 승인이 불가한 흥부동 주택 경매를 통해 시중의 외화를 거둬들이려 했던 것이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흥부동 주택은 연식은 오래됐어도 중구역이나 보통강구역에 들어선 당시 신축 아파트보다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이 주택은 공을 세운 체육인, 예술인, 과학자들에게 선물로 공급됐는데, 배산임수에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고, 한적하기까지 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유럽의 숲속 별장과도 같다’는 말이 돌았다.
더욱이 동·서평양을 잇는 금릉동굴과 류경다리 인근에 위치해 교통 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었다. 이에 흥부동 주택이 경매로 나왔다는 사실은 평양 상위 1% 사이에 입소문으로 금세 퍼졌다.
실제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2017년 당시 흥부동 주택의 가격은 20만 달러가 훌쩍 넘어 10~15만 달러 정도였던 중구역 신축 아파트 가격보다도 비쌌다. 그래서인지 국가기관들도 어마어마한 가격의 흥부동 주택 경매 결과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역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부동산 ‘큰손’들이었다. 당시 흥부동 주택을 사들인 주민의 90%가 30대 초반 젊은 부부들이었는데, 이들은 중앙당 11국 소속의 유학파 실장, 소장들이었다.
김정일 시대 21국으로 설립돼 김정은 집권 후 11국으로 개편된 이곳은 핵·미사일 개발에 꼭 필요하나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술과 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와 연구·분석하고 자력화해 전략무기 생산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맡은 중앙당 직속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북한의 각급 외화벌이 기관들은 김정은의 통치자금이나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 연구개발에 쓸 당자금을 벌어들이는 데 애를 쓰고 있었지만, 이곳 11국은 반대로 김정은의 비준(승인)하에 해외에 나가 활동하며 당자금을 썼다.
흥부동 주택의 경매와 관련해서는 돈의 출처나 직위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내적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든 부담 없이 선뜻 구매에 나설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당시 부동산에 관심이 있던 30대 초반의 유학파 11국 실장, 소장들이 움직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9년 말 김정은은 11국 간부들에게 평양시 중구역 고급아파트를 선물했다. 특히 공로가 있는 실장이나 소장들은 비밀유지 차원에서 무장 보초병들이 서 있는 초소로 둘러싸인 만경대구역의 특별관리구획에 새 아파트 한 동을 지어 입주시켰다.
국가 지시에 의해 새 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이들 중에는 2년 전 수십만 달러를 내고 흥부동 주택 이용허가증을 받은 11국의 젊은 부부들도 있었다. 영원히 개인 소유가 되리라 철석같이 약속한 국가를 믿고 큰돈을 내놓은 젊은 부부들이 결국 빈손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개인의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11국 소속의 유학파 젊은이들은 수도 평양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흥부동 주택에 눈독을 들였다가 온 가족이 벌어놓은 외화만 당에 고스란히 바치게 됐다.
이렇듯 김정은의 내적 방침에 따라 북한은 흥부동 주택을 경매로 내놓은 뒤 입주자들을 강제로 퇴거 조치하는 방식으로 총 3차례 소위 돈 있는 주민들에게서 외화를 거둬들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부 외화를 빨아들이려는 북한 국가권력은 지금도 많은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