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물려 받은 보물 가득한 ‘지하갱도’의 정체는?

[북한 비화] '고난의 행군' 당시 공병국 2개 연대 동원해 묘향산 지하 200m에 건설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소재  ‘국제친선전람관’ /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로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4년. 김정일은 그해 8월 돌연 “묘향산에 지하갱도를 건설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김정일의 이 같은 지시에 북한은 백두산건축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기술 실무진과 공병국 2개 기술연대를 동원해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근처 지하갱도 건설에 착수했다.

1978년 8월에 개관한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김정숙(김정일 생모)이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수반이나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보관·전시한 곳으로, 평안북도 향산군에 위치해 있다.

국제적 사회주의 연대가 무너지는 등 대외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내적으로는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 김정일은 우선 아버지 때부터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선물을 관리하기 위한 지하갱도 건설을 지시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은 최근 “김정일이 특별 지시한 지하갱도는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이 유사시 파괴될 것에 대비해 선물들을 대피시킬 장소였고, 실제로 국제친선전람관 인근의 지하 200m 은밀한 곳에 건설됐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내부는 물론 외부 은폐물까지 모두 최고의 자재들을 사용했고, 방수 마감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공사를 진행했다. 지하갱도 안에는 특수강과 고강도 유리로 된 보관실이 꾸려졌으며,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와 문은 일반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 특수장치들로 설계·완공됐다.

소식통은 “지금 주민들이 흔히 돌아볼 수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은 140여 개의 전시관으로 돼 있는데, 여기에 감히 전시 못 할 정도로 값지고 비싼 선물들이나 귀중한 보석들은 100여 개 보관실이 갖춰진 지하갱도에 보관되고 일상 전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4년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급격히 악화하자 당시 인민군대 역시 배급이 끊길 정도의 위기를 맞았다. 지하갱도 건설에 동원된 공병국 2개 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 이들은 썩은 옥수수와 보리를 섞은 밥, 염장무 한 조각, 멀건 소금국을 먹으면서 지하에서 12시간씩 2교대로 건설에 나섰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공병국 군인들은 이렇듯 간고한 상황에서도 피와 땀으로 3년 만에 지하갱도 건설을 완료했다. 1997년 완공 당시에는 3년 전 착공 때 건설 인원의 3분의 2만 남아 있었고, 그마저 남아 있던 이들은 모두 피골이 맞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김정일은 지하갱도 건설이 끝난 그해 가을에 이곳을 찾아 너무 황홀하고 멋있다며 건설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다만 3년간의 고생 끝에 건설자들에게 내려진 선물은 김정일이 하사한 대덕산 담배 한 보루가 전부였다.

주민들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겨진 김 씨 일가의 보물들은 오늘날에도 이 지하갱도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현재는 김정은 직속의 당 중앙위원회 호위처가 이곳 갱도의 보위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