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정은이 거론한 ‘양심’…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경남도 검덕지구의 수해복구 현장을 찾았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4일 밝혔다. 김 위원장은 “검덕지구가 앞으로 그 어떤 큰물(홍수)이나 태풍에도 끄떡없게 강·하천들의 강바닥파기와 장석쌓기를 잘하고 치산치수사업을 중시하여야 한다”라며 수해 예방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위원장이 태풍 피해를 입고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함경남도 검덕지구를 현지지도했다. 태풍에 의한 피해가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를 둘러보고 복구작업을 격려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현장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했다는 말이 눈에 띈다. 노동신문 보도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김 위원장은) 살림집 건설장으로 가시는 령길에서 산비탈면에 단층 살림집들이 들쑹날쑹 비좁게 들어앉아있는 광경을 보시고 못내 심려하시었다.”

“(김 위원장은) 반세기도 훨씬 전에 건설한 살림집들이 아직 그대로 있다고너무나 기막힌 환경과 살림집에서 고생하고 있는 인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였다고, 이번에 저런 집들도 다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주지 못하는 것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었다.”

인민들의 살림살이에 대해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못하여 이렇게 뒤떨어진 생활환경 속에서 살게 한 데 대하여 심각히 자책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가 이런 지방 인민들의 살림형편을 보고서도 외면한다면정말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의 살림집 모습(2019년 2월 촬영). / 사진=데일리NK

북중 국경지역에서 관찰되는 낡은 북한 집들

북중 접경지역을 여행해보신 분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강 저편의 북한 마을들을 보셨던 기억이 있으실 것이다. 강을 따라 북한 지역들을 둘러보다 보면 느끼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정말 집들이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필자도 2014년에 북중 접경지역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번에 검덕지구를 둘러보면서 낡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던가 보다. 평양과는 완전히 천양지차인 낡은 집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나 보다.

김 위원장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다”는 표현까지 쓴 것을 보면, 인민들의 곤궁한 삶에 대해 나름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 자체가 다 의도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실 분도 있겠지만, 김정일 시대에는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인민들과 교감하는 듯한 언급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김정일과는 다른 김정은의 리더십은 당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도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인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데 할애했다. 감정에 복받치는 듯 울먹이기도 했고, 자신이 나라를 이끌고 있지만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자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 역시 모두 연출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연출이라면 정말 고도의 연출을 한 셈이다. 하지만, 조선중앙TV를 모니터했던 제 눈에는 김정은의 눈물이 ‘의도적 연출’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회색 양복을 입은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을 하던 중 재난을 이겨내자고 말하며 울컥한 듯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연합

김정은은 인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인가

그렇다면, 김정은은 정말 인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일까?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을 인민사랑의 지도자라고 열심히 선전하고 있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이 정말 인민들의 곤궁함을 해결하려는 진정 어린 의지가 있다면 그렇게 할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어려움은 핵개발과 이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비롯된다. 김 위원장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북한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인민이 아니라 김일성 일가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해서 세계체제에 편입되면 인민들의 생활은 향상되지만, 김정은만 보면 눈물까지 줄줄 흘리는 절대적이고 신성화된 김일성 일가의 절대권력은 유지되기 힘들어진다. 외부의 정보가 유입되는 상황에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허구적인 우상화는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정은, 개방 가능할 정도로 독재의 수준을 낮출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이 개혁 개방을 하면서 독재권력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중국도 개혁 개방을 했지만 공산당 독재체제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진핑(習斤平) 주석의 권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진핑의 권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들, 중국은 북한처럼 ‘최고지도자 이외의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사회가 될 수는 없다. 해외를 자유롭게 오가고 외부 정보에도 노출돼 있는 중국 인민들이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우상화와 신격화를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를 원한다면 개방을 해야 한다. 그런데, 개방을 통해 외부정보 유입을 어느 정도 허용하려면 지금보다는 독재의 수준을 낮춰야 한다.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 정도의 독재만을 하겠다고 해야 개방의 가능성이 열린다. 김 위원장이 북한에서 가지고 있는 절대권력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과연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독재자가 스스로 권력을 제한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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