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300여 명 다단계 피해… “이혼-정신과 치료로 극심한 고통”

다단계 회사에 출자했다 피해를 입은 탈북민들이 지난 17일 서울 금천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데일리NK

한국 사정에 어두운 탈북민들이 다단계 사기에 속아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는 300명 이상이며 피해 금액은 40억 원에 육박한다고 피해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하나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탈북민들이 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탈북민들이 해당 다단계 회사에서 일하고 피해를 본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들에 대한 파악이나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법적으로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 피해를 구제받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다섯 배 만들어 줄게”… 하나원 갓 나온 탈북자 노리는 다단계 사기

데일리NK 취재를 종합해보면 쇼핑몰을 가장한 다단계 회사인 H사는 물건을 구매하면 5배를 적립금으로 주겠다는 말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이곳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가입을 해야 하는데 출자금에 따라 직급이 정해지고 매일 일정량의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

여기서 회원들을 다른 사람을 추천해 다시 가입자를 만들고 일정한 돈을 받는다. 회사는 10만 명의 회원을 모으면 그때부터는 수익이 본격적으로 출자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출자자들은 회사 말을 믿고 대출에 사채까지 동원해 출자했다.

피해자 A(50대) 씨는 하나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18년 H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입사 권유를 받았다. A 씨는 먼저 한국에 와서 정착한 친구의 말에 큰 의심은 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본 회사와 회장은 번듯한 모습이었고 출자금에 5배를 돌려주겠다는 말은 솔깃했다. 무엇보다 A 씨는 빨리 돈을 모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오고 싶었다. 다단계로 의심된다면서 만류하던 주위의 우려도 A 씨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단계 피해 방지를 위한 시민단체에 활동했던 대표, 번듯한 건물에 차려진 사무실, 여기에 유명 연예인 부녀를 홍보모델로 내건 회사가 자신을 속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A 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빨리 가족을 데려오고 싶다는 희망찬 A 씨의 선택은 비극으로 돌아왔다. 다단계 업체에 속아 자금을 완전히 잃은 A 씨는 이혼을 당해 가정이 완전히 파괴됐다. 그는 현재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직업을 구해 착실히 미래행복통장(탈북민 자산형성지원제도)에 저축하며 생활하던 A 씨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A 씨는 다단계 업체에 속아 다른 탈북민들을 끌어들인 사실을 자책하며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회사에 있는 동안 내가 주도해서 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너무 크다”며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의 돈을 보상받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A 씨는 비가 꽤 내리는 와중에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과 금천경찰서에서 H사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다단계 회사에 출자했다 피해를 입은 탈북민들이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데일리NK

다른 피해자 B(60대) 씨 역시 북한에 남은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를 알아보는 중에 해당 회사를 알게 됐다.

B 씨는 “북한에 남겨진 자식들을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를 알아보고 있었다”면서 “한 행사장에서 북한에서 있을 때 브로커를 했다는 사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그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H사를 설명해줬다”면서 “복잡한 공식, 특허를 내세우면서 유혹하기에 일자리라도 구할 생각으로 2016년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 씨는 “다단계 사기라고 하지 말라고 딸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딸이 보여준 조희팔 관련 영상을 보고 나서야 다단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조희팔은 2004부터 2008년까지 다단계 판매 업체를 차리고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약 5조 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 수신 사기 사건 주모자이다.

“한국에서도 돌격대를… 저임금, 무임금 노동도”

또 다른 피해자 C(50대) 씨는 “H사는 월급도 주지 않으면서 탈북민들의 정착금, 장려금까지 착취했다”면서 “우리 법을 모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주장했다.

C 씨는 “북한 돌격대처럼 탈북민으로 이뤄진 특공대라는 조직도 있다”면서 “특공대는 돈도 받지 못한 상태로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 탈북민 부부는 월 120만 원을 받으면서 H사에서 운영하는 00원에 식초를 만들었다”면서 “그러다 나중에는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여기서 북한 돌격대는 당의 정책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조직으로 주요 건설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또한 무임금이나 저임금으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북한 사회에서 경험과 기억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탈북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