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낳는 순간 한 여성은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그리고 비로소 그때야 자신을 낳고 키운 엄마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아이를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고 작은 변화에도 마음을 졸이다 보면,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의 희생이 뒤늦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된 순간, 정작 엄마에게 달려갈 수 없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국민통일방송이 제작한 휴먼 다큐멘터리 ‘엄마에게 가는 길’은 바로 이 먹먹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탈북민들은 한국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지만, 북에 남아 있는 부모와 자녀를 가슴 한편에 품고 있다. 이들에게 이산(離散)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평양 출신 탈북민 나민희·김정국 부부는 한국에서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이 소식을 평양의 부모에게 전하지 못한다.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화를 입을까 우려해서다. 영화 속 나 씨는 어머니를 향한 가상의 영상편지에서 “엄마, 엄마가 할머니가 됐어. 그리고 나도 엄마가 됐어. 엄마한테 그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죄송해요”라며 눈물을 쏟는다. 가족이라면 자연스럽게 나눌 출산의 기쁜 소식조차 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분단의 씁쓸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에서 의사로 일하다 탈북한 한현영 씨의 비극도 매한가지다. 그는 경제난을 견디지 못해 탈북했지만, 아들과 딸은 북에 남았다. 이후 딸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딸의 출산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한 씨는 손주들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봐야 하는 현실에 가슴 아파한다. 이처럼 이산의 고통은 헤어지던 순간에서 멈추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 손주의 성장 등 가족의 시간이 흐를 때마다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탈북민 김은주 씨의 사연은 분단의 아픔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떠난 그는 한국에서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이제 열한 살, 여섯 살이 된 아이들에게 부모의 출신을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지는 그에게 또 다른 숙제로 남았다. 부모 세대가 겪은 분단과 탈북의 기억은 이렇게 자녀 세대의 삶에 스며든다.
다큐멘터리를 연출을 맡은 정은주 감독은 네 살 된 자신의 아이를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봤다고 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만난 탈북민들의 사연은 저마다 달랐지만, 엄마를 그리워하고,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았다고 말했다.

80년이라는 긴 세월에 너무도 익숙해진 분단은 역사책 속 무덤덤한 단어로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분단은 엄마에게 가지 못하는 이유이자, 딸의 출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아픔이며, 손주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봐야 하는 현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이산가족’의 문제로 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산은 과거형이 아니다. 국경을 넘는 순간 가족과의 연락과 만남이 차단되는 한, 분단은 새로운 이산가족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들에게 ‘엄마에게 가는 길’이 열리는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
휴먼 다큐멘터리 ‘엄마에게 가는 길’은 오는 16일과 17일 서울 중구 서울영화센터에서 열리는 ‘UMG 필름기획전: 분단가족’에서 상영된다. 이번 기획전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어 통역사로 알려진 샤론 최가 각본을 맡고 덴마크 프레데릭 쉘베르 감독이 연출한 ‘하나코리아’도 초청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획전 마지막 날인 17일에는 ‘엄마에게 가는 길’ 상영 직후 출연진 나민희·김은주 씨와 북한 출신 배우 정하늘 씨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GV)도 진행된다. 행사 참여 신청은 국민통일방송 홈페이지와 행사 포스터의 QR코드, 별도 신청 페이지 등을 통해 가능하며, 영화 예매는 서울영화센터 홈페이지에서도 할 수 있다.
![[서평] 북한 주민들의 삶은 ‘찰지고 맵짠’ 말 속에 있다](https://www.dailynk.com/wp-content/uploads/2026/09/20260919_jsk_찰지고-맵짠-이북-사투리_표지-218x150.jpg)



![[북한읽기] 탄광마을 개변, 부족한 재원은 또 주민 몫?](https://www.dailynk.com/wp-content/uploads/2026/09/20260928_lsy_평남-탄전-석탄-증산-독려-100x7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