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여정 “트럼프 후 美정권도 상대”…재선 실패 염두?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해 8월 공개한 ‘초대형방사포’ 발사 관련 사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사장으로 향하는 듯한 모습. 뒤쪽에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따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붉은별tv 유튜브 캡처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또 담화를 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미국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입장이다. 이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이 입장을 밝혔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김여정이 다시 한번 전면에 나선 것이다.

몇 가지 포인트들을 짚어보겠다.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열어뒀나

김여정은 “모르긴 몰라도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이 미국 측에나 필요한 것이지 북한에게는 비실리적이고 무익하다는 것이다.

또, 올해 안 북미정상회담은 미국이 원한다고 해도 북한이 받아들여주면 안 된다면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게 무익하며, 둘째 새로운 도전을 해볼 용기가 없는 미국과 마주 앉아 봤자 시간만 떼우게 될 것이고, 셋째 “쓰레기 같은 볼턴이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 든 ‘시간 떼우기’와 관련해 북한은 비교적 정확히 지금의 정세를 이해하고 있다. 미국에게 북미정상회담이 필요한 것은 “수뇌회담 자체나 그 결과가 아니라 … 자기들(미국)에게 정치적으로 재앙거리가 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북한)를 눅잦히고(누그러뜨리고) 발목을 잡아 안전한 시간을 벌자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김여정은 밝혔다. 미국이 “대선 전야에 아직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전 미국에게 유리한 북미정상회담을 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추가 발사 같은 도발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요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트럼프의 입장에서 북한의 ICBM 도발은 대선에 악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언급은 그 자체를 실현하겠다는 것보다도 북미협상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도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김여정이 말하는 취지다.

하지만, 김여정은 이런 가운데서도 미국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북미정상회담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과 당장 마주 앉을 필요는 없지만, “미국의 중대한 태도변화를 먼저 보고 (회담을) 결심해도 될 문제”라고 밝혀 북미회담 가능성도 열어뒀다. 비핵화에 대해서도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협상에 나설 수 있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했던 최선희 담화와는 입장이 조금 바뀐 것이 아닌가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상의 언급들을 보고 북한이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문구 자체로만 보면 그런 해석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여정의 담화를 뜯어보면 북미정상회담은 미국의 중대한 태도변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 즉 미국이 북한에게 큰 선물 보따리를 가져오는 경우 회담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북한 입장이다. 한국과 미국 쪽에서 북미정상회담 얘기가 자꾸 나오니 한미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는 보겠다는 정도가 북한의 생각인 것 같다.

북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 트럼프 재선 실패 염두에 두고 있나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게 큰 선물 보따리를 가져다 주게 되면 트럼프에게는 선거에 악재가 된다. 그런 북미정상회담이라면 트럼프로서는 안하는 게 낫다. 북한도 물론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김여정이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여정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를 염두에 두는 듯한 언급도 했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해야 한다”고 김여정은 밝혔다. 또, “(미국의) 현 집권자와의 친분관계보다도 앞으로 끊임없이 계속 이어질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북한)의 대응능력 제고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 지금 북한은 트럼프 정부뿐 아니라, 미국에 달라진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가능성까지 고민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북한도 보고 있을 터이니 이러한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선 전 추가 도발 가능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추가 도발 가능성을 여전히 시사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응하는 대응능력 제고를 강조했고, “미국으로부터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고 … 실제적인 능력을 공고히 하고 부단히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 위협에 대응하는 실제적인 능력이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 즉 핵탄두를 탑재한 ICBM 능력을 말한다. 트럼프 정부뿐 아니라 그 이후 행정부까지 상대하려면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생각인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진정한 고민은 북미정상회담을 언제 할 것이냐가 아니라, 미국의 대선 국면에서 어떤 타이밍을 골라 추가적인 ICBM 능력을 보여줄 것이냐가 될 것이다.

김여정 위상은 여전

마지막으로 짚어볼 부분은 김여정의 위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대남 적대 공세를 주도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보류 지시로 체면을 구긴 김여정이지만 대미 관계에서의 입장을 대표적으로 밝힌 데에서 보듯 김여정의 당내 위상은 막강한 것 같습니다. 대남사업에서 신뢰할만한 일 처리를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여정을 중용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용인술이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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