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여정 “文연설에 속이…” 北, 南 비난할 자격있나

지난 2019년 3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할 때 모습. /사진=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이틀 전인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남북협력에 대한 의지를 다시 밝힌 데 대해 북한 김여정이 오늘(17일) 담화를 통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제목부터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며 노골적인 비난이다.

“맹물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놓았다”
“남조선당국자(문 대통령)의 연설을 듣자니 저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디마디에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매캐하게 묻어나오는 궤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막말이 한두 번이 아니니 일단 막말은 제쳐두고 김여정이 주장하는 논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김여정, “남한이 약속 저버려

김여정은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면서,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신의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남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남한이 왜 신의와 약속을 저버렸느냐, 여기에 대해 김여정은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조선(남한) 당국이 이행해야 할 내용을 제대로 실행한 것이 한 조항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정상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등을 언급해놓고 한 일이 뭐가 있느냐는 반문인 것 같다.

김여정은 이에 대해 “북남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결과)로 되돌아”왔다며, 남북관계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집요하고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미국 눈치 보고 유엔의 대북제재 눈치 보느라 남북협력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北영변 핵시설. /사진=연합

남북협력 안 된 것은 북한 핵 문제 때문

물론, 북한 주장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을 중시한다는 것은 이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든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남북협력을 하지 못했느냐. 북한 핵문제에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북한에 장비 하나 물건 하나 들어가는 것도 다 제재에 저촉되는지 살펴야 한다. 유엔 제재 하에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 철도 도로 연결 어렵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제재의 예외를 인정받으려 노력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북한 주장은 제재 타령 하지 말고 남북한 경제협력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시킬 의지가 있다면 외부 여건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착각하고 있다. 남한이 생각하는 남북관계 발전은 우리가 국제경제체제에서 원활하게 활동하는 가운데 가능한 선의 협력을 하겠다는 것이지, 유엔 제재 위반하면서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남북경협 하자고 유엔 제재 위반해 우리 경제가 피해를 입는 것을 동의할 한국 국민은 거의 없다. 아무리 진보 정권이라도 우리 경제 피해 감수하며 남북 경협에 나설 수는 없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영변 핵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북한 제안을 미국이 수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비핵화의 로드맵 즉 북한이 비핵화를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마무리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북한이 제대로 밝힌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니, 그러한 논의 조차를 거부하고 있다. 요즘은 아예 ‘비핵화는 개소리’라며 노골적으로 핵보유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남한 정부는 없다.

핵문제 진전 없이 남북경협 증진 가능할까

이번 기회에 우리 정부도 그동안의 상황을 되짚어봐야 한다. 북한 핵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경협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다분히 이상론적인 얘기다. 현실이 이런데도 남북 간에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를 해 놓으니 북한이 약속을 안 지켰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북한이 혹시라도 대남 압박을 통해 남한 정부가 유엔 제재를 어겨가며 남북경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런 꿈은 빨리 깨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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