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죄를 지었다”…농촌진출자 명단 든 선전원 아내의 유서

[북한 비화] 남편 따라 농촌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결국 아들과 극단적 선택…'탄원'의 비극

1947년 김일성이 농촌마을을 시찰할 때 모내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우리인민은 모두가 다 기와집에서 이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김일성, 1962년)

“흰 쌀밥에 고기국을 먹여야 한다는 수령님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인민들이 강냉이(옥수수)밥을 먹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픕니다.”(김정일, 1999년)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입니다.”(김정은, 2019년)

북한의 영원한 경제목표 ‘흰쌀밥에 고깃국’에 대해 3대(代)째 내려오는 발언이다.

북한은 2019년 당 초급선전일꾼 대회 이후 ‘간부들부터 앞장서 농촌을 적극 지원하자’며 각 기관, 단체,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에서 일반 주민들을 상대로 사상교양, 선전선동 사업을 하는 초급 간부들에게 가족을 이끌고 농촌 진지로 탄원할 것을 주문했다.

그동안 간부들의 안일해이 때문에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그토록 바라던 염원, ‘흰쌀밥에 고깃국’이라는 경제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면서 유훈관철에 초급 간부들부터 앞채를 메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19년 5월 남포시 당위원회는 초급선전일꾼들 중 30~40대 젊은 일꾼들을 대상으로 농촌진출자 명단을 내려보냈다. 당시 남포조선소 당위원회 선전부 부원 김 씨(41세)도 진출자 명단에 포함돼 황해북도 협동농장 일반 농장원 겸 선동원으로 배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이 같은 통보를 받고 며칠을 망설였다. 평양 태생이지만 대학 때 연애하다 가정을 이뤄 자신을 따라 남포까지 내려온 아내에게 또다시 농촌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당의 결정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며칠 후 힘겹게 입을 떼 아내에게 통보받은 내용을 알렸다. 그러면서 “가족농촌진출 선구자 명단에 들어갔으니 한 달 내로 떠날 차비를 하라. 당신은 갑작스러워 힘들 수 있으니 내가 먼저 내려가 자리잡고 3개월 안에는 내려와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결정을 흥정한 것으로 되니 나를 지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해북도 농촌으로 내려간 김 씨는 아내와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남편 김 씨가 떠난 후 아내는 번민에 사로잡혔다. 그는 농촌에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 자신의 인생 그리고 농촌에서 평생 썩어야 하는 10살 아들의 인생에 한숨을 쉬면서 당의 결정을 받아들이라는 남편을 원망했다.

북한은 당결정을 전체 일꾼들과 인민들이 일생동안 집행해야할 지상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김 씨의 아내에게는 농촌으로 진출하라는 당의 결정이 낭떠러지에 떠미는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내는 유서를 남기고 아들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은 20대 시절부터 연애한 정으로 남편을 따라 농촌에 갈 수밖에 없다해도 아들의 사회성분이 농민으로 호적에 올라 영원히 농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소똥 밑에 묻힌 인생으로 처박힌다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김 씨 아내가 남기고 간 유서의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제2, 제3의 고난의 행군도 대를 이어 평생 끝나지 않을 길을 가기에는 너무 힘들다면서 가족농촌진출대상자로 박힌 당결정을 거부하고 아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한 것에 대해 ‘죽을 죄를 지었다’고 했다.

황해남도 안악군 대추협동농장의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이 유서는 남포조선소 안전부에 의해 소각처리됐으나 그 안의 충격적인 내용은 조선소 가족들과 남포시당 초급선전일꾼 가족들 속에 삽시에 퍼졌다.

이 사건으로 남포시당은 그해(2019년) 가을부터 당결정에 따른 농촌진출자 대상 가운데 가족진출자는 사전에 심중히 조직심의해 통보하도록 했다.

북한은 최근에도 ‘탄원’이라는 미명 아래 전당적 조치로 전국의 청년들과 제대군인들을 농촌으로 진출시키고 있다. 근본적인 목적은 농업생산량을 늘이기 위한 것이겠지만 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료 등 농사에 필요한 자재도 턱 없이 부족하고 농기계를 돌릴 형편도 되지 않는 농장들이 수두룩하지만 북한은 자력갱생의 구호만 외칠 뿐이다.

‘흰쌀밥에 고깃국’이라는 유훈관철을 위해 북한은 지금도 주민들을 강제로 농촌에 진출시켜 자유를 앗아가고 무모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