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김정은의 난제… “선군정치 벗어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코로나 악재에 국경봉쇄 등 각종 중요 사업에 병력 투입...군 사기·기강도 추락

노동당 창건일 75주년(10·10)을 맞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 김정은 국무위원장 양옆으로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과 박정천 군 총참모장(왼쪽)이 자리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도 인민군대에 대한 당적(黨的) 영향력과 핵무력 등 비대칭전력 중심 전쟁 준비 강화 의지를 피력해왔다. 또한 건설 등 사회 전반 사업에서 군의 역할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군대 없이는 조국 보위도, 수해 피해 복구도, 국경 방역 봉쇄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 이번에 재차 드러난 것으로, 아버지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를 점차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하려던 일련의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북한군은 현재 동기훈련 중임에도 코로나19 봉쇄를 목적으로 핵심 군 전력을 북중 국경에 투입했다. ‘해안, 전연(전방), (북중) 연선 철통 봉쇄’라는 김 위원장의 주문에 초특급 국가방역 정책 관철에 나선 셈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에서 군이 수행해야 할 과업은 갈수록 늘고 있고, ‘선군노선의 영향 감소 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수해가 발생한 황해북도 은파군에서 군인들이 피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코로나19 국경봉쇄, 수해 피해 복구도 이 도맡아 수습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핵무력 강화’를 필두로 ▲당-군 관계 재조정 ▲군의 위상 약화 ▲군의 경제적 역할 강화를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선대의 정치적 기반이던 ‘선군’(先軍)을 과감히 도려내고 정상적인 국가운영 체계로 노선 이향을 추구해온 것이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와 자연재해는 김 위원장의 복안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회주의 국가공급 시스템이 없어진 북한에서 국정 위기 상황 시 명령에 복종할 집단은 역시 인민군대 밖에 없었고, 이에 군인들은 휴가도 반납하고 국경봉쇄 등에 투입돼야만 했다.

여기서 특수군단인 폭풍군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올해 중순부터 대거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 등 북중 국경에서 ‘사람은 물론 움직이는 모든 물체 사격’이라는 강력한 통제 임무를 수행 중이다.

또한 검덕지구(함경남도)와 함경도, 강원도 수해 피해 복구장에 군인들이 파견돼 철야 전투를 벌여야 했다. 이처럼 당국은 여러 현장에 군은 전면 동원시켰고, 이에 현지에서는 ‘군관들이 지휘 관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 코로나 영향 받지 말아야전쟁 준비 박차 강조

이렇게 군을 각종 사업에 동원하면서도 비대칭전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략전술체계 완성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핵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는 재래식 군사 대결 때도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전군(全軍)에 각인시키는 작업을 병행했다는 뜻이다.

비대칭 전력 강화로 무게 추가 옮겨진 북한 군은 ‘당의 친솔 군종’으로 여기는 전략군을 중심으로 전군 전문병 부대의 개편을 단행하면서도 기술 인재를 포섭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지난해 말에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김 위원장의 ‘새로운 무기의 실전배치’ 전략도 점점 실제화됐다. 일단 지난 5월 새로운 GPS(인공위성위치정보)기재가 전자전 부대에 실전배치했고, 전선 구분대에 신 비화통신기와 C4I(작전전술지휘통제체계)를 도입했다.

이는 우리 군에 대한 전방위적 공방 능력을 개선과 연관된 대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 함께 황해북도 신계 등 전선 지역에 신형 초대형 방사포들을 집결시키고 새로운 편제 부대들을 늘려 수도권을 언제든 초토화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판 순항미사일이라고 평가되는 금성-3호의 해상 및 지상 배치는 지난 11월 완결됐다. 저고도 비행과 탐지가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 군의 입장에서는 난제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병력의 현대화도 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 정보기술학원(이전 군사전문학교) 졸업생들을 특혜로 선발해 ‘전략로케트군’ 운영기술 하전사들로 입대시켰다. 무기 배치와 함께 이를 추동할 인력 배치에 나섰다는 평가다.

또한 전군 군단, 사령부 지휘부에는 IT 전문 대학졸업생을 입대 시켜 기술참모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부대의 작전, 종합상황, 전술방안 체계, 일일 작전근무, 작전문서 등을 망라한 군 인터네트(인터넷)망을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젊은 전문지휘관 인프라도 구축한 것이다.

이밖에 당국은 ‘군은 코로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면서 지난 2월 동기훈련 시작부터 강조한 ‘전쟁 준비 완성’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포 무력을 지난해보다 1.5배 확충했다. 이 또한 대남 공격에 중점을 둔 행보다.

정신 무장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0만 명을 넘어서던 지난 3월 21일 총참모부 작전훈련국 명령에서 두드러진다.

당시 노동당 창건 75주년(10·10) 기념 열병식을 최대규모로 준비하기 위해 군단, 사령부별 자체훈련에 돌입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던 것이다. 이는 ‘전염병도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에서다.

또한 당국은 이번 동기훈련 첫 달에 남조선 무기체계와 전반적 실태를 학습하는 ‘적군학(敵軍學)’을 우선시 했다. 정치와 내무, 군사 상학(학습)이 중점을 둔 예년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적을 상대로 한 실전 학습을 통해 내부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정은_당중앙군사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5월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뉴스1
군대 없인 못 살아”…‘() 선군외쳤지만 불가능증명해 준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내부에서는 탈영이나 밀수 등 이탈행위가 지속 포착되는 등 기강 해이 등의 조짐이 지속 포착되고 있다.

또한 부대별 훈련 부족으로 인한 사기 하락과 함께 수해에 투입된 군인들의 약탈 사건으로 인한 군민 갈등도 고조됐다. 군의 경제건설 동원 증가에 따른 부작용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뜻이다.

당국에 대한 신뢰 하락도 적지 않았다. 적절한 배급도 받지 못한 채 각종 동원에 시달린 군인들이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었던 것이다.

이는 올해 단행된 승진 및 세대교체 흐름과도 연관된다. 김 위원장이 군심 이반 방지 및 불만 해소를 위해 총참모장 원수 수여 등 파격적 조치를 취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젊은 세대를 중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꾀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종합적으로 보면 당에 의한 군의 장악·통제를 꾀했지만, 올해는 북한 스스로 ‘우리는 아직 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계’라는 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정상국가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김 위원장에게 극복해야 할 과제가 추가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