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 한반도 해빙 메시지?…급할수록 돌아가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일 제8차 당 대회를 맞은 수도 평양의 거리를 조명했다. 평양 거리엔 ‘당 제8차 대회’라는 문구와 함께 붓과 망치, 낫 그림이 그려진 당기가 여러 개 꽂혀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이 5일부터 시작된 8차 당대회 3일차 사업총화보고(1.7)에서 대남-대외 관계에서의 전략전술적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여 주목된다.

“보고는 조성된 형세와 변천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남문제를 고찰하였으며 대외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우리 당의 총적 방향과 정책적 입장을 천명하였다”(1.8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아직 발언의 세부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김정은이 지난 5일 개막사를 통해 “일찍이 있어 본 적이 없는 최악 중의 최악”이라는 표현으로 경제난을 시인한 후 나온 발언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필자는 지난해 칼럼에서 2021년이 남북관계에 있어 또 다른 시험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바 있다. (▶관련 기사: [북한정론] 北의 ‘Again 2018’ 통일전선전술 경계해야)

이번 김정은의 발언은 이런 예측에 무게를 더해 주는 듯 하다. 향후 우리 정부의 대처가 매우 중요해졌다. 북한의 전략전술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길로 가느냐’ 아니면 ‘우리가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야 하느냐’를 비롯, 남북관계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현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4일 신년사를 통해 “영화 ‘토르’를 보면 9개의 세계가 일렬로 정렬할 때 우주의 기운이 강력하게 집중되는 컨버전스(convergence) 현상이 일어난다”고 비유하면서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다시 한 번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불러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통일부는 북한의 거듭된 거부에도 불구하고 20억 원 규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물품 대북반출을 승인했으며 “8차 당대회가 한반도 평화 및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1.7)고 밝혔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10·10)기념 열병식에서 북극성4형으로 추정되는 SLBM을 공개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남과 북의 손뼉이 다시 마주칠 듯한 느낌이다

남북관계 복원을 오매불망(寤寐不忘)하고 있는 현정부에 당부한다. 이번 김정은의 발언을 교류협력 재개의 계기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2018년 ‘한반도의 봄’이후 지난 2년동안 북한이 보여준 잔인하고도 이중적인 행태, 그리고 단기이벤트 중심의 남북관계의 허망함을 꼭 곱씹어 봐야 한다. 2019년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의 가속페달을 더욱 세게 밟았다.

지난해 10월 10일 당창건일 열병식에는 그동안 개발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대구경방사포 등 최신형 무기들을 총동원하여 위력을 과시하였다. 8.15광복절 등 주요 계기마다 평화 메시지를 내놓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바보, 멍청이’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부었다. 수백억 원의 국민혈세가 들어간 개성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표류하던 해수부 공무원을 총격살해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북으로 달려가서는 안된다. 조급해서는 안된다. 타산할 것은 타산해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변화 움직임은 핵을 내려놓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려는 셈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경제난 심화로 인한 전략전술적 변화일 뿐이다. ▲미국의 트럼프 퇴장-바이든 등장이라는 과도기적 국면 ▲전세계가 하나가 되는 도쿄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 ▲한국에서 21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는 연도라는 시기적인 요소가 고려된 조치이다. 내부적으로 ‘핵보유국+정면돌파전 2.0’을 기조로 해서 ‘선(先) 한국정부 활용, 후(後)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경제외교적 곤궁국면을 탈피해 나가려는 저의이다.

김정은의 노림수는 완전한 비핵화(CVID)나 개혁개방으로의 길로 가지 않으면서도, 핵도 가지고 대북제재도 해제해 보려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전술이다. ‘(내부적)지구전 체제 구축+(대외적)경제난 탈출구 확보’가 이번 발언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보다 큰 그림, 전략전술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북한의 시간표가 아닌 우리의 타임테이블(time table)이 중요하다.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의 동북아 정책-대북 정책과의 조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칫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의욕이 너무 앞서면, 미국 신행정부와의 정책갈등만 깊어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인권개선을 위해 갖은 어려움을 감수하며 경제제재 전선에 동참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지난 2년여동안 북한의 갖은 수모와 위협을 굳건하게 참았던 그 마음으로 조금만 더 여유있게 북한을 상대해 나갈수 있을지, 혹은 9부 능선에 이른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목이 마른 이성계에게 급하게 물을 마시면 체한다며, 물에 나뭇잎을 띄워 주었다”는 아낙네(후일 신덕왕후가 됨)의 구전설화가 생각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Haste makes w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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