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의 선택 : 관망일까, 도발일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 건설사업을 현지지도하며 행정구역 명칭을 ‘경루동’이라고 할 것을 지시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여정이 8월 들어 2차례(8.1/8.10)의 담화를 통해 불을 지핀 ‘한미합동훈련 중단-주한미군 철수’ 요구와 ‘훈련 강행시 보복’ 위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북한의 가시적 도발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8월 21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보통강 주택건설지구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20여 일간의 긴 침묵을 깨고 군사부문이 아닌 민생현장 시찰을 선택할 이유는 무엇일까? 김여정발(發) 태풍은 자연히 소멸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애기하면, 필자는 “김정은 행보는 다분히 복선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410여 일간 중단되었던 ‘남북 간 통신선 전격 복원’으로 시작된 지난 7말 8초의 북한 행보는 치밀한 각본에 입각해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상식이기 때문이다. ▲연락선 복원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무장해제시켜 놓은 후, ▲곧바로 이미 사실상 시작되어 중지할 수 없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했고, ▲이어 ‘주한미군 철수’까지 공개 압박하였다. 게다가 김여정은 ‘김정은의 위임’임을 밝혀 담화의 무게까지 더하였다.

필자는 ▲지난 4월 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 발표, ▲5월 말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북한의 무조건적 대화복귀 촉구”이후 김정은의 긴 침묵이 갖는 의미에 대해 평가를 한 바 있다(2021.5.11./6.1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오히려 김정은의 역린(逆鱗)북한인권문제까지 건드렸다. 더구나 시기적으로도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8월 한미합동군사훈련실시 여부가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대한민국과 미국이 설정한 운동장으로 선뜻 나올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다지 크지 않다. 오히려 한번 더 어깃장을 놓아 향후 협상장에서의 몸값도 올리고, 핵전력도 고도화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수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그 방법은 김정은은 직접 나서지 않고, 김여정이나 외무성 대변인 담화 등으로 한미정상회담의 이중성과 호전성을 강하게 비판한 후 자위권 차원에서 신형전략무기 시험발사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핵심요지는 “북한이 올해 초 8차 당대회를 선제적으로 소집하여 <핵+자력갱생의 정면돌파전 2.0> 지구전(持久戰)을 결정한 상황에서 전술적 변화, 즉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 호응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평가는 유효하다.

김정은이 정권안정을 위한 최후보루이자 전한반도 공산화 통일의 핵심 수단인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해 ▲기술적 완성도 제고를 독려해오면서 ▲미국을 향한 전략미사일 도발, 일종의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치욕을 잊지 못해 협상과 교류협력을 일체 거부한 채 핵·미사일 고도화+자력갱생 정책으로 몸을 더욱 움츠렸다.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이 이를 더욱 부추겼다.

이런 김정은이 외부(특히 문재인 정부)로 눈길을 돌렸던 첫번째 계기가 지난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국면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대북제재·코로나19 장기화 국면 속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대화 및 인도적 지원 제의를 거부하며 긴장의 수위를 제고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7말 8초 공세 이전에 ▲무려 나흘간이나 최초로 전군 지휘관 및 정치지도원 강습회(7.24~27)를 소집하고 ▲7월 27일 남북통신선 복원에 전격적으로 합의하고(북한 주민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규모나 방식면에서 유명무실해진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통신선을 또다시 차단하고 ▲김여정,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주중-주러 대사 등 최고위 간부들이 주한미군 철수 릴레이 성명전을 전개하고 있는 저의는 무엇일까? 특히 근본 중의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주한미군 철수’까지 이 시점에 주장하고 나섰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도 바로 김정은의 대전략, 근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일련의 조치는 김정은이 집권 이후 취하고 있는 ‘핵·미사일 강국 건설’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번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계기로 김정은이 년 초 8차 당 대회에서 공개 지시한 ‘핵-미사일 고도화 계획 실행에 있어 진일보를 이룬 후,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모색해 보려는 조치’의 일환이라고 평가한다.

즉, 김정은이 핵개발을 거의 마무리 해가는 시점에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향후 전개될 협상에서 운신 폭을 최대한 넓혀 놓으려는 양수겸장의 수로 봐야한다. 향후 북한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시나리오는 핵·미사일 시험, 휴전선·NLL 인근에서의 무력도발, 우회 침투, 온·오프라인 테러, 남북·미북·미중 간 다양한 수준의 대화와 교류협력 등을 상정할 수 있다. 즉, 주요 계기에 상황을 주도 또는 반전시키기 위해 벼랑끝 전술, 물밑 대화 등 모든 수단을 배합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할수 있기 때문에 수위를 조절할 것이다. 김여정이 지난해 6월 예고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관광 관련 기구 해체,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안보는 최악의 수를 가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전략미사일 도발 분위기는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다.

김정은의 선의를 믿거나, 한반도 평화라는 꿈만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종료되는 시점에 즈음하여 자위권,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주장하며 신형 잠수함탄도미사일이나 장거리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수 있다. 최근 김정은이 전략군에 “임의의 시각에 즉시 시험발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명령을 하달(2021.8.11. 데일리NK) 하였다는 첩보를 가볍게 봐 넘겨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이 ‘선(先) 도발, 전진기지 확보→ 일정기간 긴장국면 유지 → 후(後) 협상, 경제실리 도모’ 의 구상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시나리오에서 주목되는 계기는 이번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종료된 직후와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국면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종료되는 8월 26일경은 그동안 축적한 미사일 기술력과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전개한 여론전을 기초로 김정은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 건조식·시험 발사 등의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적기이다. 그런 연후 일정기간 냉각기를 거친 후 핵군축 협상을 제의할 수 있는데,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국면이 적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대략 5가지다. 첫째, 북한의 자력갱생에 기초한 신경제발전 5개년계획 수행이 1년 정도 경과한 시점이므로 지속 추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 둘째, 바이든 정부도 집권 2년차를 맞아 국내외의 혼미한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북한 문제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시기라는 점, 셋째, 한국에서도 3월 초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점, 넷째,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평화 올림픽을 통해 패권국의 위상을 과시하려 할 것이라는 점, 다섯째,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 증강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할 시점이라는 점 등이 북한의 공세적 행보를 어떤 식으로든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북한은 당분간 중국을 업고 핵전력 고도화와 자력갱생을 기조로 하는 ‘정면돌파전 2.0’에 주력하면서 한미당국의 대처 동향을 지켜볼 것(wait& see)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시진핑 회담도 있을 수 있다. 물론 핵·미사일 실전 배치와 향후 진행될 군축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싸움과 전략전술적 도발을 병행해 나갈 것이다.

김정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면, 2021년까지는 ‘고난의 행군과 핵전력 강화’, 자신의 집권 10주년인 2022년은 ‘승리자의 해’라는 자기중심적인 시나리오가 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좀 더 멀리는 9차 당 대회가 열리고 미국의 포스트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는 2025년까지를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 3일 국회에 출석하여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진행되면 잠수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북한에게 도발 의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말해야 하는 것은 박지원 원장과 같은 류의 발언이 아니라, “북한이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도발할 경우, 한국은 자위적 차원에서 미국과 핵억제력 강화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할 것이다”라는 엄중한 경고이다.

이런 의미에서 24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되는 성 김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회담도 대북 인센티브 제공보다는 목전에 있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한 사전·사후 대응조치, 북한 비핵화를 위한 공조 문제 논의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긴 시각을 가지고 당당하게 북한 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한다. 교류협력, 평화, 정말 중요하다. 그렇지만 국가안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남북 간 대화 제의는 위기관리 조치가 어느 정도 끝난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튼튼한 한미공조를 기초로 엄중한 경고와 정찰 활동 강화를 통해 김정은의 도발을 예방해야 할 때이다. 모든 건 다 때가 있고, 격이 있는 법이다. 김정은이 올해 초 8차 당 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에 명문화한 핵전력 강화, 주한미군 철수, 통일전선사업 강화 방침을 다시금 곱씹어 봐야 한다.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이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거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요하며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2021.1 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 서문)

※ 본 정론의 중장기전망 부분은 『김정은과 바이든의 핵시계 –알기쉽게 풀어쓴 ‘자유 대한

민국’ 전략노트』 (곽길섭 저/2021.7.15. 기파랑)의 내용을 발췌, 인용하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