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께 보내는 림일의 편지] <49> 1996년 8월, 평양의 환희

나는 2014년 9월, 키르기스스탄공화국 수도 비슈케크에서 있은 제80차 국제펜대회에 144번째 가입 회원국인 망명북한펜센터의 대표로 참가했다. 옛 소련(현 러시아)의 위성국가였던 이 나라의 수도는 내 고향 평양과 도시풍경이 매우 유사했다. /사진=림일 작가 제공

김정은 위원장북녘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남녘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이 여름의 8월 하순입니다오늘은 내가 25년 전 이맘 때고향 평양에서 잠시 만끽했던 격동의 환희에 대해 이야기 하지요무슨 소리인지 궁금하죠?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17살인 1985년부터 사회생활을 했지요철도안전국 건물관리소사회안전부 건물관리소를 거쳐 1996년까지 평양대외건설기업소 노동자로 일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다소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입니다.

수도 평양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뼛속까지 체험한 정신적 불편함은 정치조직생활입니다공화국 공민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하는 수령사상학습노동당강연생활총화행사참가충성의 노래모임 등 온갖 정치활동 행위이지요.

무척 알고 싶었습니다다른 나라도 대통령의 사진을 집집마다 걸어놓고 조석으로 인사하며 사는지외국인들도 자기·호상비판 위주의 생활총화를 하는지국내를 유동하는 것도 당국의 엄격한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등 말입니다.

여러 해외근무 경력자의 환담을 종합해보면 어느 나라 인민에게도 강제적 정치조직생활은 전혀 없어보였지요오히려 사회주의체제가 망했다는 소련(러시아)의 도시와 마을상점에 쌀과 고기사탕이 가득하다는 소리에 크게 놀랐죠.

1990년대 들어서며 평양의 인민생활은 더욱 궁핍 속에 빠졌답니다국영상점은 하나 둘씩 문을 닫았고 시내 곳곳에 외화상점외화식당만 늘었지요그래서 더욱 해외건설에 나가려고 마음을 굳히고 필사의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사회안전부 노무자 시절인 1990년 가을러시아에 있는 대동강건설사업소 근무희망 문건을 중앙당에 올렸지요친계 6촌까지 경력모범적 조직생활 평정서 등의 서류검토는 3~6개월간 걸리며 제 문건은 독신이기에 탈락되었지요.

1993년 여름대외건설기업소로 이직해서 리비아 근무희망 문건을 상부에 올렸으나 또 부결되었습니다이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중앙당에서 쿠웨이트 파견승인이 전격 결정되었죠그 시기가 1996년 8월 말바로 이맘때랍니다.

사회생활 11년 만에 이뤄진 간절한 소원이니 정말 환희겠죠그 기쁨의 순간을 굳이 비교하면 언제인지는 몰라도 당신이 은둔속의 스위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자기만의 자유세상인 공화국(북한)으로 귀국한 환희나 똑같지 않을까요?

김정은 위원장나는 고향이지만독재자 당신만의 무릉도원인 평양공화국을 과감히 뛰쳐나왔죠유년시절 서유럽에서 현대사회를 공부한 당신은 근대사회 최악의 독재자라는 세계의 규탄을 애써 외면하려 결국 평양에 갇혔습니다.

노동당의 강압적 철권통치로 전체 인민은 안대를 썼고입에 재갈이 물렸고귀에 못이 박혔습니다소경이고벙어리이고귀머거리가 된 그들이기에 당신네 김 가 수령들이 오늘날 자손대대 아주 쉽게 독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로 인해 당신은 이 지구상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반대로 당신의 노예, 2천만 인민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굶주리는 존재들이 되었다는 사실 조금이라도 아셨으면 합니다.

당신도 똑같이 신이 주신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면눈물과 감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2천만 인민의 동물같은 비참한 삶을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보시오수십 년 세월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대 과반의 공화국 인민들 말입니다

2021년 8월 23일 – 서울에서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