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式 인간·사회개조 실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선배 세대들의 ‘불굴의 투쟁’을 다시 공부해 오늘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올들어 새 경제발전계획을 발표한 뒤 전후복구, 천리마시대 등을 되짚으며 당시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최근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확산 방지와 제국주의와의 대결전을 구실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이나 개혁·개방을 한사코 거부하며 자력갱생에 기초한 ‘제2 고난의 행군’ 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올해 초 8차 당대회(1.5~12) 폐막 이후 당대회 제시과업 관철을 위한 집체모임이 날마다 열리고 있다. 한 전문가는 올해 북한 당정군·단체의 집회 일수가 족히 1개월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관영매체가 보도한 당정치국 확대회의(6.29) 소식을 통해서는 군부서열 1·2위 인물 해임과 코로나19 국면을 책임지고 있는 최상건 당비서 체포·숙청 징후까지 확인되었다. 이밖에 김정은 건강이상설, 주민봉기설, 쿠데타설도 꾸준히 나돌고 있다.

북한 내부에 뭔가 특이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을 평면적·단선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 문제는 늘 신중하고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볼 때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내 특이현상에 대한 지속 추적·평가는 물론 김정은이 의도적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김정은식(式) 인간·사회개조 운동’을 펼치고 있지 않나 하는 점도 함께 유심히 짚어봐야 한다.

김정은은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난 승부사이고 냉혈한이다. 집권 10년차에 즈음하여 ‘북한판 문화 대혁명’을 추진할 수도 있다. 우리는 김정은이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실현을 위해 “전 주민의 반이 죽어 나가더라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독재자”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김정은의 자신의 나라·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이른바 ‘김정은 몽(夢)’)이 성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0여 년 유일독재 체제의 잔영 ▲수탈·분배 정권 특성 ▲당정군 기득권층들과 김정은 간의 악의적 공생관계 ▲전통적으로 굶주림에 익숙한 사회라는 점 ▲중국의 막후지원 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동향을 이런 측면에 볼수 있는 근거는 첫째, 김정은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빌미로 2020년 1월에 하달한 북중 국경 폐쇄 명령이다. 대외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관계 전면 단절이라는 결단, 손실의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경제적 측면에서의 손실은 엄청나다. 그렇지만 ▲북한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북한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로 상당히 경계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인식만 하면, 대중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자력갱생 체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좋은 모멘텀(好期) 이다. ▲게다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체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의 하나인 탈북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부가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다. 탈북민 문제는 숫자로 바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초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는 탈북민을 사격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는 등 국경경비를 더욱 강화했다. 이 결과 지난 5일 통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까지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은 단지 33명뿐이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연간 입국 탈북민이 많게는 1500명을 넘기는 등 꾸준히 1,000명대를 유지하던 것이 지난해 229명으로 급감한 데 이어 올해는 100명도 넘기지 못할 전망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북·중 국경 봉쇄 이전 탈북민이 포함된 숫자라고 설명했다”(이상 7월 5일자 세계일보 요약).

둘째, 지난해 12월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상물을 유포하는 자에게 최고 사형까지 형을 내리고 있을 수 있게 한 이 악법의 제정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비사회주의 소탕전’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K-pop은 암이라고 규정하고 자본주의 문물의 침습을 막지 않으면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는 얼마 전 외신 보도(6.10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셋째, 북한체제 운영의 가이드 라인인 당규약 서문에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명문화한 점도 주목된다. 이는 장기적인 이상향을 제시하여 주민총동원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다. 김정은이 청년동맹 대회(4.27)에 보낸 서한을 통해 ‘2036년을 사회주의 강국 건설 원년’으로 제시한 점과 실천수단으로 간부혁명,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당은 앞으로의 5년을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오는 효과적인 5, 세월을 앞당겨 강산을 또 한 번 크게 변모시키는 대변혁의 5년으로 되게 하려고 작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거창한 투쟁을 련속적으로 전개하여 앞으로 15년 안팎에 전체 인민이 행복을 누리는 륭성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일떠세우자고 합니다.”(김정은 서한)

넷째, 공안기관의 역량 강화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당 조직지도부,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등 이중삼중의 거미줄 같은 감시체계가 작동하고 사회이다. 그런데 2021년 8차 당대회에 즈음하여 당중앙검사위원회와 당검열위원회를 통합시키면서 산하에 집행부서인 규율조사부까지 신설했다. 그리고 법무부·군정지도부도 신설하여 당·정·군 간부 감시 체계를 보다 강화했다. 한마디로 지금 북한은 간부혁명과 부패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식조직 이외에 비상설 검열그룹빠들도 수시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한국과 미국의 거듭되는 대화 복원 제의, 특히 경제난·코로나 위기국면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인도적 지원마저 거부하고 있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북한의 기본입장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한 대북적대시정책 철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핵을 보유한 자력갱생의 나라-비사회주의 현상이 척결된 수령의 나라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런 연후에 경제도약을 노리자. 지금은 정비하고 보강할 때다. 고슴도치 전술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된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도 장기적이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하에 대북정책 플랜A·B를 함께 검토해 나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북핵과 북한을 넘어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상대가 거시적·복합적으로 행동하는데, 우리만 애닳아 해선 안 된다. “이기는 것을 탐하면 얻지 못한다”(부득탐승:不得貪勝)는 바둑의 격언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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