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北 비핵화, 한반도 비핵화…김정은 용어혼란 전술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review)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처, 대선기간 중 갈라진 민심 봉합, 미얀마 사태 등 국내외 산적한 긴급현안들을 처리하느라 로우키(low-key)로 진행되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을 비롯 안보라인들의 관련 발언이 조금씩 나오고는 있으나 아직은 원론적인 수준이다.

블링컨_미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Antony John Blinken) 미국 국무장관. / 사진=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블링컨의 북한 비핵화용어 선택이 갖는 의미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 블링컨이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한 짧은 발언이 주목된다. 그는 화상회의 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라는 말을 사용했다.

미국도 북한의 비핵화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으며, 평양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 등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다.”

외교와 협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합의조항의 순서 하나하나가 갖는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시작이자 끝이라고 한다, 상황 정의, 합의 도출, 후속 이행조치의 방향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핵폐기 협상에서의 ‘비핵화’ 개념이다.

남·북·미가 의도하던, 의도치 않았던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즉 ‘비핵화’라는 단어를 똑같이 쓰고는 있지만 ▲북한은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 ▲대한민국은 북한 비핵화,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VID/FFVD)를 염두에 두고 협상하고 합의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그러니까 정상들이 만나 큰 틀에서는 합의를 할 수 있으나, 실무자들이 세부 이행방안을 협의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갈등이 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시기 미·북 비핵화 협상의 난항과 파국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는 북한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지난 4년간의 실수를 반복할지 아닐지는 첫 출발점과 마지막 결승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공감(consensus)에 달려 있다.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은 건물 하나 짓는 데도 기초공사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하물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정부 정책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기본·기초가 중요하다.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평양공동선언문
2018년 9월 합의된 평양공동선언문.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용어를 고집하는 속셈

김정은은 집권 이후 단 한 차례도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거나 공식 매체, 합의서 등에 명기한 일이 없다. 오로지 핵개발의 당위성과 권리를 강조하면서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북측(김정은)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2018.3.7. 정의용 방북특사단 단장 귀환 언론발표문),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2018.9.19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

이처럼 김정은이 말한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김일성 시대부터 주장해온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한 한반도”를 상정한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론>의 연장선이다. 이것은 2016년 5월 7차 당대회가 종료된 직후 북한이 ‘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7.6)으로 발표한 ①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②남한 내 모든 핵기지 철폐와 검증 ③미국 핵타격수단(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금지 보장 ④대북한 핵무기 사용과 위협 금지 약속 ⑤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규정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대 조건>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후 북한은 남북-미북 간 합의문에 이를 관철시켜 나가고 있다. 즉 세부 조항에 ▲ ‘한반도 비핵화’로 표기하고 ▲ 다른 사항들이 이행될 경우 시행하는 조건부(후순위 배치)로 되어 있으며 ▲ 이행한다가 아니라 “노력한다”로 명기되어 있다.

“20186월 미북정상회담: 1.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2. 한반도 평화구축 협력 3.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4. 신원이 확인된 미군유해 송환

“20189월 남북정상회담: 1.한반도 전쟁위협 제거 2.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대책 강구 3. 이산가족 문제 해결 4. 다양한 분야의 남북교류협력 추진 5. 한반도 비핵화 노력 6. 김정은 위원장 서울답방

이것은 2005년 9월 베이징에서 6자회담 참가국이 합의한 <9.19 베이징 공동선언>이 “첫 조항에 북한 핵 폐기를 명기”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 핵-미사일 전력 강화를 중단하지 않은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이 2018년 4월 방북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내 아이들이 핵을 지닌 채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비핵화 의지의 중요한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핵과 미국 핵우산이 함께 철폐된 한반도’를 상정한 발언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1991년 11월 주한미군 전술핵을 모두 철수시킨 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단 한 개의 핵무기도 없다”고 이미 선언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9일 앞서 5일부터 7일까지 이뤄진 8차 당대회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의 용어혼란 전술

한마디로 김정은의 속셈은 평화를 지향한다는 명분을 확보하는 가운데 협상에서 등가적(等價的) 상호 조치를 요구하려는 데 있다. 한국과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협상과정에서 핵도 갖고 경제외교적 실리도 챙기려는 위한 전략전술인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 들어서는 아예 한발 더 나아가, 8차 당대회를 소집하고 ‘핵을 기초한 무력적화통일 노선’을 당규약에 명문화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데 대하여 명백히 밝히였다. 이것은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립장의 반영으로 된다”(개정 당규약/2021년 1월10일 조선중앙통신).

이는 핵무기 개발이 9부 능선을 넘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비핵화 협상은 없다. 핵군축(nuclear disarmament) 협상만이 있을 뿐이다. 대결국면이 격화될 경우에는 무력도발도 서슴지 않겠다”는 것을 노골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 비핵화 발언을 통해 역(逆)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공식화한 가운데 ▲ 핵-미사일을 더욱 고도화·대량생산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 향후 협상을 조건부 군축협상으로 진행함으로써 핵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유하려는 ▲ 그러다가 협상이 결렬될 경우 ‘파키스탄식 핵보유국’으로 회귀하려는 고도의 전략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북한 비핵화로 용어를 통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그렇다면, 과연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개념과 대책은 정확한 상황 인식과 평가에 기초한 것일까?

김 위원장의 평화, 대화,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게 있다고 생각한다“(2021118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싱가포르 성명 등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았음을 확신한다”(202125일 정의용 외교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아니다. 결코(Never) 아닌 듯하다.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로 전선을 넓혀 안보-경제실리를 동시에 챙긴 후, 실제로는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김정은의 속셈(가칭 <변수형 비핵화 전략>)이 너무나 빤히 보이는데도 정부는 계속 소망성 얘기만 한다. 북한이 헌법과 당규약에 ‘핵보유국’임을 명문화하고 핵-미사일 고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위협적 사실(facts)에 애써 눈 감고 있다.

핵무기 소형화, 경량화와 전술무기화를 서둘러야 한다. 초대형 핵탄두 생산도 지속…..다탄두별 유도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단계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으며 각종 전자무기들, 무인타격장비들과 정찰탐지수단들, 군사정찰위성설계를 완성한 데 대하여……..(20211월 김정은의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김정은에게 당당히 물어야 한다. “당신이 말하는 비핵화가 북한 비핵화인지,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한 상황을 가정한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정부가 ‘북한 비핵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애매모호한 행보에서 벗어나 분명히 행동해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북핵 폐기, 그리고 바이든 정부와의 첫 단추를 잘 꿰는 순리(順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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