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북한에서 뇌물의 고리를 끊으려면

2017년 초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북한 규찰대가 길 가던 주민을 단속하고 있는 모습.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근대 국가의 탄생에 중요한 이론적 논의를 제공한 것은 사회계약설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국민들은 납세, 국방 등 국가에 의무를 다하고 국가는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해준다는 계약에 의해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국가의 탄생은 이 같은 사회계약론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터무니없는 의무만을 강요하는 등 국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사회계약론에서 권력의 원천은 인민의 동의(consensus)에 있다. 사회계약론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안전한 가운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개인의 자유’를 확립해야 한다는 이념 하에, 정치의 주체를 군주나 귀족이 아닌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 규정했다. 이 같은 내용에 따르면, 국가는 인민 위에 설 수 없고, 인민의 자유와 권리(인권)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가 된다. 현재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같은 규정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북한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28일 유엔 고등판무관실(OHCHR)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으며, 부패와 억압이 곳곳에 만연해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의식주와 노동, 거주 이전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본질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는 능력에 따라 그런 권리가 부여된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재가 아니라 뇌물을 바치는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생존을 위해 뇌물을 바쳐야만 하는 기형적 사회구조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북한의 국가는 억압사회를 넘어 공포와 처벌을 통치의 근간으로 하는 범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인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는커녕 처벌과 갈취를 통해 인민들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병폐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구조적인’ 폐악이니 만큼 근본적인 처방밖에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를 본격 수용하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 뇌물과 부패가 일상화된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화의 진행이다. 장마당 등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자본주의 학습을 통해 생존해가고 있는데 당국에서는 그것을 억누르려 하다 보니 어둡고 음습한 부패의 싹이 커진 것이다. 자본주의를 본격 도입하고 그것을 양성화한다면 법치가 작동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뇌물과 부패 행태는 상당 부분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기엔 하나의 조건이 따른다. 개혁개방 이전에 북한 당국이 비핵화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정권의 교체(regime change)다. 비단 뇌물과 부패의 문제뿐 아니라 북한 문제의 대부분이 김 씨 일가의 세습독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은 정권 교체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사회계약론자인 로크(John Locke)는 잘못된 통치에 대한 인민의 저항권을 주장했고, 동양에서도 맹자와 같은 성인들이 “아무리 천자라도 선정을 베풀지 않고 백성들을 잔학무도하게 다스린다면 제위를 빼앗아도 무방하다”는 방벌론(放伐論)을 제시했다.

그러나 두 방법 모두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김정은의 의식변화인데 그것 역시 여의치 않다. 그러면 이대로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과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북한 당국을 압박하여 북한 주민들의 기본권 향유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작은 물줄기가 큰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듯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만이 북한 당국을 변화의 길로 나오게 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