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文 대통령, 김정은과의 협력만 중요하다는 건가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요청하는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 7일 신년사에 이어 14일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에 대한 환상은 이어졌다.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답방 여건 마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협력을 제안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대북 인식을 드러냈었다.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이와 동일한 인식을 고수하며 언어의 성찬을 늘어놨다. 국민들이 보기엔 현실과 유리됐을 뿐 아니라 공감을 느끼기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발언들이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언급했다.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고 김정은의 답방 여건을 만들겠다며 접경 지역 협력,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도쿄 올림픽 협력 방안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돌아온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 축하 메시지 전달을 놓고 고무됐던 한국 정부에 대해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노골적으로 “설레발을 치고 있다”며 면박을 줬다. 김계관은 “남조선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 친분 관계에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도 했다. 구애의 대상인 북한 당국이 계속해서 강도 높은 거부감을 드러내는데도 아랑곳없이 러브콜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스토킹 수준이라 할 만하다.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 협상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인식은 계속됐다. 문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도 당연히 제재 완화를 포함한 상응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내용은 현재까지 공전을 거듭해온 비핵화 협상의 맹점을 간과하는 것으로, 북한 당국에 핵 개발을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주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민들은 북한 당국이 지난 2018년 1차 미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보여줬던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의 그 리얼리티 쇼와 같은 이벤트를 비핵화의 진정성으로 받아들이고 대북 제재를 완화해 줬어야 했는가. 당시에도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다며 마치 한반도의 비핵화가 내일이라도 실현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심어줬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북한 당국은 핵 무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핵을 포기할 의사는 만무하다는 결기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 남북 협력이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는지에 관해 문 대통령은 명쾌한 설명이 없다.

미북대화에 관한 전망에서도 문 대통령은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당국이 자신들의 요구가 수긍돼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의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고, 미국 정부가 북한 당국의 요구를 먼저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 당국의 주장은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미동맹에 관한 문 대통령의 인식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어느 때보다 공고하며 한미 간의 소통과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이 밝힌 남북협력 방안들에 관해 미 국무부와 하원 외교위원장은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남북 관계 진전은 북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하고 남북협력 구상들도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신년사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초지일관 북한 당국과의 협력을 통한 관계개선을 희구하고 남북협력을 비핵화의 원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 ‘당국’과의 관계개선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의 의중엔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당국과의 협력만 중요하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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