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교’ 강공 카드 내놨지만…北, 말레이 사태 동요 확산 노심초사

소식통 "21일 해외 공관에 '무역일꾼 사상총화 확대-감시 강화' 지시"

19일(현지 시각)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북한 대사관 구내로 승용차 한 대가 진입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성명에서 말레이시아 당국이 북한 주민을 ‘불법 자금 세탁’ 관여 혐의로 미국에 넘겼다며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사진=연합

말레이시아가 불법 자금세탁 혐의를 받는 북한 무역일꾼을 미국에 송환한 일을 계기로 북한이 말레이시아에 단교를 선언하는 등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일꾼들에 대한 동향 보고 강화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데일리NK 중국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1일 중국을 비롯한 해외 주재 자국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 ‘해외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일군(일꾼)들에 대한 감시와 보고 체계를 강화하라’는 지시문을 하달했다.

기존에는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서 무역회사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 총화가 주 1회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주 2회 이상으로 확대되고 무역일꾼 개인의 동선 및 특이 동향 보고도 수시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이 철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체류 중인 북한 해외 일꾼들의 경우 기존 감시 인력의 업무와 권한이 확대되고, 상호감시 및 동향 보고가 강화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태의 여파가 해외 파견 일꾼들의 사상적 동요나 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북한 당국의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당국은 이번 지시에서 무역일꾼들에게 말레이시아 사태와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등 입단속을 주문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특히 중앙당은 외무성에도 지시문을 하달해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말레이시아와 관련된 언급을 삼가라고 명령했다.

대북제재 위반으로 말레이시아 당국에 체포된 문철명 씨의 부인 강선비(왼쪽) 씨가 지난 2019년 12월 6일 재판 방청을 위해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
내부서 충성분자도 못 지켜내냐실망감 확산…사상적 이완에 큰 영향

하지만 이미 해외에 체류 중인 북한 주민들은 물론이고 평양의 간부급 주민들도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단절 사태를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전해들은 북한 주민들은 당을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충성 무역일꾼도 지켜내지 못한 당국에 큰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소식통은 “조선(북한) 인민이 최대 적대국 미국에 잡혀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더욱이 우리가 핵을 가지고 있으면 국제사회에서 외교도 하고 무역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핵이 있어도 어떤 협상이나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대북 제재를 위반해도 타격을 받지 않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핵무기도 자국민을 지켜내는 데 힘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는 얘기다.

또 다른 소식통도 “미국에 잡혀간 무역일군이 자기를 위해 사치품을 들여온 게 아니지 않느냐”며 “최고 존엄(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태양 같이 생각해서 목숨 걸고 당에서 요구하는 물건들을 들여오는 건데 당(黨)이 지켜주지 못하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계속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역일꾼들은 자금세탁 혐의로 미국에 송환된 문철명 사건을 보면서 대북 제재 물품 반입 업무에 대한 회의감과 당국에 대한 실망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자칫 잘못하면 이번 말레이시아 사건이 해외에서 금지 물품을 조선(북한)으로 들여가는 무역일꾼의 사상적 이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당국이 이 점을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