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농장원, 완전 무임금에 장사 금지

▲ 집단농장에서 추수하는 주민들 <사진:연합>

지금 북한주민들은 대부분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당국이 집단농장원에 대해 장사를 금지하고 오로지 농삿일에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집단농장원에게 장사를 금지시킨 이유는 군량미 확보에 최우선을 둔, 이른바 ‘농업주공전선’ 강화정책으로 인해 집단농장원은 무조건 농삿일에만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

또 함경북도 집단농장의 경우, 추수 이후 농장원 1인당 100kg 전후의 식량을 배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최근 농민들의 형편이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100kg은 하루 300g에 채 미치지 못하는 양이다.

집단농장원은 완전 무임금에 배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현재 북한의 최하위 20%가 대부분 농민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장 총각들은 여성들로부터 결혼기피 대상 1호로 꼽혀 결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함경북도 어랑군 A집단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다 8월 초 탈북한 주영길(가명. 36세)씨는 “함경북도는 9월 1일부터 가을추수를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매달 쌀과 옥수수를 7:3의 비율로 6-12kg 배급받다가 12월이 되면 그 해 수확량에 대한 최종분배를 받게 된다”며 “지난해 12월에는 9, 10, 11월에 받았던 식량 26kg을 공제하고 80kg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씨는 “1년에 100kg 정도의 식량을 받아봐야 하루 300g도 안된다”며 “지금 북한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들 20%를 꼽는다면 대다수는 농민들”이라고 덧붙였다.

주씨가 일하던 A집단농장은 농장원 숫자상 함경북도 어랑군에서 3번째 규모로서, 작업반 별로 35명 전후의 농장원들이 5개의 ‘작업분조’로 구성되어 작업반 단위로 농사일과 수확물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은 주씨와 일문일답.

집단농장은 무임금, 쌀은 간부들 임의로 분배

– 집단농장의 임금과 식량배급 상황은 어떤가?

“농장원들에게 주는 임금은 없다. 내가 농장에서 5년간 일하면서 돈은 한푼도 받아본 적이 없다. 농장은 수확물을 분배하는 것으로 임금을 대신한다. 특별히 정해진 식량배급도 없다. 가끔 작업반장이 농장의 남새(채소) 같은 것을 나누어 줄 때가 있다”

-쌀은 어떻게 분배받았나?

“쌀은 매달 주는 것이 아니고 9월부터 다음 해 식량을 나누어 주는데 특별한 기준 없이 간부들이 임의대로 준다. 쌀은 옥수수와 같이 섞어 나누어 준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쌀을 줄 때도 있고, 입쌀을 주기도 한다. 11월이 되면 탈곡까지 완전히 끝나게 되는데 그때도 조금씩 쌀을 준다. 완전한 식량 분배는 12월에 마무리 되는데 다음해 1년분 중에서 9월~11월에 나누어 주었던 것 공제하고 분배해준다. 나는 작년 12월에 9~11월 미리 받은 것을 공제하고 강냉이 30%, 입쌀 70% 비율로 80kg 정도를 받았다. 내 앞으로 1년에 100kg 정도로 계산해준 것 같다. 나는 혼자여서 그만큼 받았고, 가족이 있는 집은 더 준다.”

-농장의 수확물들은 어떻게 분배하나?

“우리 농장에서는 쌀, 옥수수 외에 고추, 가지, 무우, 배추 등을 재배했다. 수확물들은 9월 1일부터 분배를 해주는데, 국가에 바칠 것과 군대에 보낼 것을 빼고 내년도 농장에서 먹을 것까지 저장한 다음에 개인들에게 분배한다. 미리 농장에서 채소를 가져다 먹은 것은 공제하고 분배해준다. 그러니까 미리 채소를 많이 가져다 먹은 사람들은 수확철에 분배 받는 것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수확물에 대한 특별한 분배 기준은 없다. 간부들이 농장원들을 유치원, 인민학교, 중학교, 성인 농장원 등으로 분류을 해서 임의데로 배급량을 정한다. 배급량은 해마다 다르다.”

-장사는 왜 못 하나?

“국가에서 집단농장원들은 장마당에서 거래를 못하게 한다. 군량미를 우선 확보해야 하니까 농장원은 무조건 농사동원이다. ‘농업주공전선’이다. 달아나지 못하게 농장원에 대한 감시 통제가 심하다.”

-식량 100kg로 1년간 살 수 있나?

“제대로 먹진 못해도 아주 굶진 않았다. 쌀, 옥수수, 채소 등 농장 수확물로 연명하고 얻어먹기도 하고,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 북한에서 제일 못사는 사람이 농장원이다. 농장원에게 시집오려는 처자(처녀)가 없다.”

-농장 규모는?

“농지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일한 곳은 어랑군에서 세 번째 안에 들어가는 큰 농장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집단농장은 기본적으로 작업반으로 구분되고 여기에는 실제 유효노동인원 뿐만 아니라 부양가족까지 포함된다. 한 개 작업반에 5개의 ‘작업분조’가 있다. 한 개 분조에는 5-7명 정도로 구성되고 한 작업반은 35명 전후였다”

-그럼 분조 단위로 작업하나?

“원칙은 모든 분조원이 늘 함께 일하는 것인데, 모든 분조원이 한날에 다 작업에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몸이 아픈 사람도 많고, 중국이나 도시로 달아난 사람들도 있다. 병원 진료소에서 환자로 진단서를 받아오거나 미리 작업반장에게 신고하고 장마당에 물건을 사러 나가거나 집안일 할 때는 농장을 쉬기도 한다. 결근하면 식량이나 돈을 지급할 때 일한 날짜에서 제외한다”

-가족은 몇 명이었나?

부모님은 사망했고, 결혼을 한번 했는데 이혼했고 아이는 없다. 작년에 온성에서 여자를 하나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았는데 4월에 말도 없이 도망갔다. 혼자 살기가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중국으로 도망왔다”.

-농장일에 동원 오는 사람도 있나?

“모내기 철과 수확철에 학생, 노동자들이 동원된다.”

-하루 노동 시간은?

“하루 8시간 일하고 모내기 철이나 수확철에는 늦게까지 일한다. 매월 1일, 11일, 21일 쉰다. 열흘에 한번꼴이다. 모내기철이나 수확철에는 쉬는 날도 없다.”

-겨울에는 뭐하나?

“겨울도 바쁘다. 비료가 적으니까 인분을 섞어서 퇴비를 만들어야 한다.”

-김일성 때는 먹고 살다가 김정일 때 식량이 확 줄어든 이유가 뭔가?

“중간 간부들 때문이다. 간부들이 중간에서 제대로 보고를 안 했기 때문이다. 비료도 부족하다.”

-집단농장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나?

“총책임자는 초급당 비서다. 어랑군에서 내려 보낸다. 그 밑에 작업반장이 있고 분조장이 있다. 작업반장이나 분조장은 어랑군에 거주하는 당원들이다.”

-그럼 식량 분배는 누가 하나?

“식량 책임자가 따로 있다. ‘식량마당장’이라고 한다. 식량책임자는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농장원들에게 식량과 채소를 준다. 그래도 분조장 위로는 먹고 살만하다. 분조장 위로 일을 잘 하지 않는다.”

-어떻게 국경을 넘었나?

“개산툰(중국 용정시) 쪽으로 강을 넘어서 왔다. 군대에 줄 돈(뇌물)도 없어 단독으로 강을 건넜다. 조선돈으로 400원을 들고 집을 나섰다. 개산툰 앞까지 오는데 7일 걸렸다. 한번은 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다 역무원 단속에게 걸려 50원을 쥐어주고 지나쳤다. 하도 가난하게 보였는지 별말 없이 보내줬다.”

-외국에서 주는 원조식량을 받아본 적 있나?

“외국에서 식량이 들어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실제 본 적은 없다. 마대자루도 못봤다.”

-농장원들은 개인 뙈기밭을 가질 수 있나?

“우리 농장은 못하게 했다. 그냥 자기집 텃밭에 30평 정도 수확하도록 허가해주었는데, 산간 뙈기밭은 금지했다. 농장 땅을 나누어 준 적은 없다.”

-텃밭에 무엇을 재배하나?

“옥수수, 감자를 지어 먹었다.”

-전기와 수도 사정은 어떤가?

“전기는 그저 잠깐 왔다가 간다. 수도는 펌프를 놓고 지하수를 먹었다.”

-농장에 어떤 농기구들이 있나?

“뜨락또르가 두 대 있었다.”

중국 룽징(龍井)=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