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납북문제를 ‘가족재결합’으로 풀어봐라

지난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남측의 주된 관심은 납북자 및 국군포로를 데려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에 이미 북측에 대규모 경제지원과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을 연계시키겠다고 공언하였기 때문이다.

납북자 가족들은 이 장관의 제의를 희망적으로 받아들였고 야당도 이 장관이 이번 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언급한 것을 진전이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납북자 및 국군포로와 관련된 합의는 공동보도문 제6항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남과 북은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문제가 크게 진척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나름대로 있는 성의를 다해 상대방에게 우리 입장과 견해를 설명하고, 설득도 했다. 이것이 시작이다. 문제를 풀어가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번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틀을 형성하는 정도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그 정도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솔직히 납북자 가족들에게는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나 언론은 이번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납북자문제가 해결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종석 장관의 위 설명은 그렇게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차라리 경이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점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장관이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고, 설명하고 설득’했는지 하는 것과 그 ‘틀’이 과연 무엇인지에 있다고 하겠다. 왜 그럴까?

‘행사’ 때문에 ‘원칙’ 포기한 통일부

지난 3월 말 금강산에서 진행된 제13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북한의 진행요원들은 한국 방송사들의 방송원고 내용에 ‘납북’ ‘나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취재와 송출을 방해 ∙ 금지시켜 결국 남한의 공동기자단은 더 이상의 자유스러운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조기 철수하였다. 실제로 상봉장에는 37년 전 납북된 신성호 선원 천문석 씨가 남측의 부인 서순애 씨와 만나게 되어 언론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측의 취재 및 방송방해 보다 더 큰 문제는 3월 23일 밤 북측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는 남측기자단이 우리를 심히 자극하는 도발행위를 감행하고 나선 데 대해 남측단장이 서면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한 점에 유의하여 2진 상봉도 그대로 진행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즉 방송기자들이 ‘납북’ ‘나포’라는 표현을 쓴 행위에 대하여 남측 단장이 사과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던 통일부는 3월 24일 “불의의 상황이 일어난 데 대해 남측 단장이 통일부의 지침을 받아 서면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며 “잘못, 사과 등의 표현은 없었다”고 해명하였으나, 이 유감표명이 사실상의 ‘사과’임은 2002년 6월 서해교전에 대하여 북측이 유감을 표명하자 한국정부가 이것을 사실상의 ‘사과’로 받아들인 점에서도 명백할뿐더러, 통일부의 홍보관리관도 “그러한 정부의 판단이 전략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지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라고 인정한 점에서도 명백하다.

물론 통일부측은 그러한 유감표명이 “그 당시 개별상봉을 어떻게 하던지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나, 남측이 ‘납북’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사실상의 사과를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과 당장의 이산가족 개별상봉 둘 중에 어떤 쪽이 중요한지를 판단한다면, 이러한 변명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전자는 한번 허물면 되돌릴 수 없는 ‘원칙’이요, 후자는 연기되더라도 다시 실행될 수 있는 ‘행사’였다.

북측의 원칙은 잘 알려져 있다. 즉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의거입북자만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납북자 문제’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여기에 현 정권은 ‘납북’이라는 표현에 스스로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북측의 원칙을 사실상 수용한 셈이 되었다.

실제로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중에 의거입북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러한 남쪽사람 480여명이 모두 의거입북이라는 주장은 아무리 북의 논리를 존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남한의 꿈 많은 고등학생이 남쪽 저 아래 해안가에서 무슨 이유에서 별안간 가족을 버리고 입북한다는 것인지, 송환하겠다고 약속한 동진호 선원들은 왜 의거입북으로 둔갑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남북이 공동보도문의 내용처럼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순서는 우선 납북인지, 의거입북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납북으로 판명되어야 송환을 요구할 수 있지, 의거입북의 경우는 송환을 요구할 논리적 필연이 없기 때문이다. 설사 대규모 경제지원과 송환을 연계하더라도 의거입북의 경우 북한은 이들을 남쪽으로 보낼 이유도 없고, 만일 보낸다면 스스로 국가임을 포기하는 공개적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북한이 서울을 겨냥한 장사정포 부대를 해체하는 대신 남한내 탈북자 송환을 요구하더라도 한국이 이 제안에 응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납북 ∙ 국군포로 가족, 남북 거주지 자유선택 하도록

필자는 이종석 장관이 이번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장에서 어떤 표현으로 납북자를 지칭하였는지, 아니면 ‘납북’이라는 개념을 직설적이든 우회적이든 사용하였는지 여부도 모른다. 다만 이 장관의 기자회견문을 보면 그는 분명 이 문제를 언급하였다고는 하였으나, 어떤 표현으로 언급하였는지는 알 수 없고, 따라서 북측이 이 장관이 언급한 그 문제를 ‘납북문제’로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회담의 최종성과물인 공동보도문 내용 중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보아서는 북측의 기존 입장, 즉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하였다는 징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만일 남측이 북측에 ‘납북자문제’를 ‘납북’으로서 제기하지 않는다면, 혹은 제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납북자 문제를 다룰 수 있을까?

이 점이 필자에게는 논리적으로 경이스럽게 느껴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납북자 송환을 ‘납북’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준거틀’이 없는 한,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인도적 해결이란 기껏해야 지금처럼 ‘납북’을 ‘이산’의 개념으로 강제 변형시켜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납북자 가족들이 만나는 것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이 납북자를 남쪽으로 데려올 수 있는 새로운 준거틀이 될까? 필자는 ‘가족재결합’의 방식으로 ‘이산가족의 구성원의 의사에 따라 거주지를 남북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식은 독일에서 1972년 동서독의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의 정신에 따라 가능해진 ‘(이산)가족의 결합(Familienzusammenführung)’과 흡사하다. 필요하다면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가족들이 남과 북을 방문하여 장기상봉 혹은 체류를 한 후에 거주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 장기방문 역시 기본조약 이후 동독 국민 중 65세 이상일 경우 서독방문과 체류가 가능해진 것과 흡사하다.

가족재결합의 장점은 의거입북이든 납북이든 무관하게 적용가능하고, 나아가 남북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민 경우 그 구성원에도 적용할 수 있을뿐더러, 원칙적으로 남에서 북으로의 이주도 허용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상호간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납북자 송환의 장애물로서 많이 언급되는 사실, 즉 납북자를 남으로 보내게 되면 납북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고민 같지 않은 고민도 쌍방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번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에 대한 반대급부의 하나로 제안된 비전향장기수 약 30명을 북으로 보내는 것도 가족재결합의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가족재결합’이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경우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남북 간에 거주지 및 국적 선택의 자유의 ‘한’ 사례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이 점은 상호간에 체제인정을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줌을 의미하고, 그것은 당연히 평화통일로 성큼 다가서는 역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가족재결합은 단순히 납북자 및 국군포로를 돈이나 현물로 사온다는 의미를 훨씬 넘는다는 점에서 경제지원 역시 국민들의 공감과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재결합’, 6.15공동선언과도 합치

문제는 북한이 가족재결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동서독의 경우 가족재결합의 준거로서 1972년 기본조약이 있었다. 필자가 볼 때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측이라면 가족재결합의 준거를 쉽게 선언문 제3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인 백낙청 교수는 “6.15공동선언 3항에서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라고 표현해 당시 합의사항이었던 이산가족이나 비전향장기수 문제뿐 아니라 분단 현실에서 발생한 여러 ‘인도적 문제’들의 해결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측 대표단 역시 바로 이 6.15정신을 기도문 외우듯 강조한다는 점에서 6.15공동선언문을 가족재결합의 준거로 이해하는 데에 북측이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따라서 가족재결합이 인도적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북측이 거부할 경우 이를 6.15공동선언에 대한 전면적 배신으로서 햇볕정책의 실패로 간주하고, 반면에 북측이 가족재결합을 받아들일 경우 이를 ‘6.15정신의 성공’으로 남측의 6.15 지지자들이 한국 국민을 설득한다면, 그리고 논리적으로 각각의 경우를 북에 대한 경제지원 여부와 완전히 연계할 경우 북쪽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간단히 말해 현 정권과 6.15선언 지지자들은 통일 문제를 논하기 전에 바로 가족재결합과 같은 인도적 문제에 ‘올인’해야 할 시점에 왔다. 왜냐하면 북핵문제나 통일과는 달리 가족재결합은 온전히 남북의 힘으로, 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우리민족끼리’ 가능하고 또 길게 시간을 끌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또 통일의 상태가 남북국민들 간의 자유로운 왕래를 전제한다면 바로 가족재결합과 이산가족 상호장기방문은 통일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나 다름없다. 따라서 만일 6.15선언 지지자들이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면 통일이야기는 더 꺼낼 필요도 자격도 없다.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다음 회담은 2006년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부산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만일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과 관련하여 ‘납북’에 대한 추궁도, 가족재결합과 같은 새로운 ‘준거틀’도 없이 다시 회담에 임한다면 성공에 대한 기대는 고사하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처럼 그 “진의가 의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희망하건대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에 대한 언급이 국민들과 인권단체들과의 공론화를 통해 더 이상 논리적 경이로움으로 보이지 않고 최상의 방도를 모색하게 된다면, 아마 남북관계뿐 아니라 남남관계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설계’한 영예를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