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데일리NK의 보도에 의하면,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참여연대와 시민평화포럼이 공동주관해 열린 ‘천안함 진실과 민주주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라는 토론회에 이승헌, 서재정 교수가 참석하여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는 조작이라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고 한다. 정치학자인 서재정 교수의 발언에 대하여는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없지만, 버지니아 공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의 주장은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든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필자는 계간 <시대정신> 봄 호에 윤덕용 전(前) 합조단단장과 오랜 시간 인터뷰한 결과를 게재하였다. 여기서 그 내용에 대하여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합조단이 내린 조사에 의하면 ‘북한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폭침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유수의 대학 물리학과 교수가 한국정부 및 외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확인하고 동의한 조사결과를 조작이라고 의심한다면 이 의견 차이를 객관적으로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의견 차이란 이념적 가치판단이 관계하는 정책의 옳고 그름이나, 본질적으로 다양성이 전제되는 문헌 해석의 적절함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도 아니면 모’식의 과학적 논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중폭발시 버블의 팽창양상과 열전달에 대하여 KAIST의 송태호 교수는 이교수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 핵심은 이승헌 교수의 주장은 물리학의 최상위 기본 원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며,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도저히 한 물리학 교수의 주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승헌 교수와 학술토론을 원하고 있다.
II
이승헌 교수 역시 송태호 교수의 비판과 주장, 나아가 송태호 교수의 토론요청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물리학자의 명예를 걸고’ 자신의 진실성을 강조하고 있고, 또 ‘버지니아 공대에서 그가 행한 콜로키움(colloquium)에 참석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그의 주장에 수긍하는 것 같다’고 자신의 책에서 쓰고 있는 만큼, 송태호 교수의 토론 요청에 반드시 응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데일리NK에 의하면 그는 송교수의 토론요청에 대하여 “학계에서 그런 제안이 온다면 언제든지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실행여부이다. 윤덕용 전 단장, 송태호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이 교수는 수차례의 토론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 교수의 반응은 말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실망스러움을 넘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다른 한편 데일리NK의 기자가 위의 토론회 주관자인 참여연대에 송 교수와 이 교수의 공개학술토론에 대하여 질문하자 ‘일정이 빠듯하다’는 반응만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필요한 질문에 불필요한 답이다. 왜냐하면 참여연대는 이승헌 교수의 일정관리자도 아니고 또 이승헌 교수도 참여연대의 호(好)·불호(不好)에 억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이해하기 힘든 점은 이승헌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보수진영에서도 이런 과학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토론회를 자주 열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자연과학 분야의 학술토론에 왜 ‘보수진영’이라는 표현이 나와야 하는가?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좌파와 우파의 정당, 시민단체가 각각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를 열라는 것인가?
24일 국회의원회관의 토론회의 참석자들의 면모를 보면 실제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및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한국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자가 당대표인 곳이 민노당이다. 몇 년 전 몇몇 민노당 당원들이 바로 자신들의 당이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북주의에 함몰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탈당,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 ‘한국전쟁의 도발자가 누군인지’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는 자와 함께 ‘천안함을 침몰시킨 자가 누군인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토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III
국민이 바라는 것은 보수진영의 과학적 진실도, 진보진영의 과학적 진실도 아니다. ‘자칭 전문가, 특정 정당, 특정 시민단체, 특정 언론 및 일부국민’이 하나의 복합체를 구성하여 서로 되먹임을 하면서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만들었던 것은 처음이 아니다. 바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에도 이런 되먹임 구조가 인터넷을 매개체로 하여 회오리를 일으켰다. 바꿔 말해 전문가 집단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사실을 왜곡하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놀라운 점은 송태호 교수는 그의 주장을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한 반면, 이승헌 교수는 그의 주장을 어떤 학술지에도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확신에 차 있었고, 나름대로 실험을 하였으며, 또 버지니아 공대의 물리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론과 실험 및 동료들의 지지가 있다면 논문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주장을 오로지 한국의 좌파 언론과 정당 및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복합체 네트워크 안에서만 펴고 있다.
따라서 이승헌 교수가 바로 광우병 촛불시위 때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하여 과장과 왜곡을 하였던, 그러나 지금도 학자연(學者然)하는 자들과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많던 자칭 광우병 전문가 중에서 학술지에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하여 논문을 쓴 자는 거의 없었다.
이제 이승헌 교수의 학문적 진실성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좌파와 우파가 따로 나뉘어 각자의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과 화학, 열전도에 대한 전문가 집단 내에서 학문적 토론을 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그것도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물리학을 좌파이념에 바치고 있다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