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백 칼럼] 수용소에 갇힌 아이…구출 책임은 누구에 있는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압록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북한 주민의 모습. 주로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지역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중국으로 도강하곤 한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데일리NK

압록강 상류와 마주선 양강도 후창군, 어느 작은 마을. 국경 밀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한 씨에게 누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몇년 전, 강을 건너 고향을 떠났던 누나였다. ‘우리 식구 모두, 남조선(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자’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핑돌았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쿵덕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늙고 병든 어머니, 나이 어린 조카를 데리고 어찌 강을 건넌단 말인가. 강을 건너다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열살배기 조카는 눈만 뜨면, ‘엄마가 보고 싶다’고 보챘다.

‘조카만이라도 먼저 보내자’ 한 씨는 결심했다. 중국 브로커와 만날 장소를 정하고, 조카를 등에 업은 채, 압록강을 건넜다. 5월 국경의 밤. 한 씨는 맨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눈 싸라기에 안도하며, 얼음덩이 같은 발로 압록강 바닥을 더듬어 중국 쪽으로 걸었다.

‘당장 돌아서라. 돌아서지 않으면 쏜다’ 국경경비대원의 고함이 등 뒤에서 벼락같이 쏟아졌다. ‘등에 업은 조카가 총에 맞으면 어떻게 하지’, 숨이 막혔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도 없었다. 한 씨는 중국 쪽으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쳤다. 한 손으로 등 뒤 조카를 붙잡고, 또 한 손으로 강물을 미친듯이 휘저었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문득,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눈 앞이 하얘졌다. 누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던 한 씨의 바람도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보려던 누나의 소망도 작은 총탄 한 발에 부서졌다. 며칠 후. 한 씨가 눈을 뜬 곳은 후창군에 있는 한 병원이었다.

한 씨와 어린 조카는 양강도 보위부에 넘겨졌다. 3개월 동안 조사를 받았다. ‘남조선에 가려 했다’는 혐의로 정치범 수용소 수감 처분을 받았다. 아들과 손자가 수용소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늙은 노모는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손꼽아 기다리던 한 씨의 누나는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고 있다. (2020년 4월. 데일리NK에 실렸던 북한 실화 재구성)

/사진=영화 ‘크로싱’ 스틸컷

지난 11일, 통일연구원이 ‘북한인권백서 2020’을 발간했다. “한국행을 기도하다 적발돼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는 사례는 지속해서 수집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체제 출범을 전후해 국경통제 및 탈북 단속이 지속해서 강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탈북 과정에서 적발되거나 강제송환된 북한 주민의 인권 침해가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백서는 최근까지 북한에 머물렀던 탈북민 118명을 지난해 심층 면접한 내용과 통일연구원이 입수한 북한 공식 문건, 북한이 유엔 인권기구에 제출한 보고서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북한 당국은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며 동족 간에 불신과 반목을 야기시키고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가는 대결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온 세상이 모두 아는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국가라면, 생명과 자유를 빼앗기고도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을 도와야 한다. 해마다 유엔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는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해결해야할 중요한 의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6년 3월, 북한인권법이 제정됐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 노력은 국민과 정부의 책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통일부는 ‘북한인권백서’에 대한 북한 당국의 비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북한인권법 제정과 동시에 출범할 것으로 믿었던 북한인권재단은 4년이 다 된 지금도 출범하지 못했다.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수립해 놓은 정부의 기본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껄끄러워, 현대 사회의 가치인 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삼촌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다, 수용소에 갇혀 있을 어린 아이를 위해서 자유와 풍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당장, 정부의 북한인권기본계획에 명시된 북한인권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인권문제’를 남북대화의 의제로 제시해야 한다. 북한을 지원할 때에도 북한 내 인권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 북측이 당장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북한주민의 인권’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반복해서 인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