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북핵문제 발생, 원인과 해법’ 강연에서 “외교부가 한미워킹그룹이 생겼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 ‘족쇄를 찼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미워킹그룹은 비핵화, 대북제재, 남북협력 방안을 수시로 조율하는 대북 고위 실무 협의체로, 2018년 11월 설치됐다.
그는 또 “미국이 워킹그룹을 만들 때부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 건설 등 핵심 현안에서 번번이 미국 정부의 뜻대로 관철되면서 한미워킹그룹이 남북관계 발전에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면서 “이런 것들 때문에 북한이 패악질을 부린다”고 미국 탓을 하였다.
정 수석부의장은 얼마 전 북한 옥류관 주방장의 “국수 처먹을 때 요사 떨더”라는 말을 두고도 “이런 수모를 만든 것은 미국이다”고도 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이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자 “4·27 판문점 선언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으면서 워킹그룹 틀 밖에서 족쇄를 풀고 핵 문제를 풀기 위해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결국은 미국이 비핵화의 “장애 요소”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정은은 지난해 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통해 핵을 언급하며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 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고 했었다.
또한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한 것처럼 적대세력의 제재 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하더니, 지난달 열렸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언급했었다.
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 씨 3대 정권이 경제정책에 실패와 함께 북한을 세계최빈국으로 만들면서도 핵은 끝까지 고수하였다. 이들은 핵을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주는 보검으로 굳게 믿고 있는 셈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노회한 전문가로 대북 문제도 오래 다루어 봤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그가 정권의 코드와 비위를 맞추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서 하나 묻고 싶다. 김정은 정권의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와 입에 담지 못할 국가원수 비난은 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하는지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대북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맞서 북한의 제재 해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대화가 이루어져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한들 북한의 핵포기 기만과 거짓 평화는 해결될 수 있을까?
최근 국가정보원 보고에는 국경봉쇄 장기화로 심화하고 있는 북한 경제난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됐다. 즉 올해 1분기 북중 교역이 전년 동기 대비 55% 감소한 2억 3000만 달러에 그치고 수입 식료품 가격이 일시 폭등하면서 불안 심리가 가중돼 평양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는 등 내부 사정이 최악의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이 같은 경제난에 빠진 원인은 국제사회의 지속된 제재와 더불어 코로나 사태로 북중 국경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고존엄의 리더십 부족도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식 핵포기 기만 및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대항해서 이 같은 현재 실태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진정한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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