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정세현류…후대들은 당신들 책임 꼭 물을 것

무자(戊子)년 해도 이제 열흘 정도 남았다. 이때쯤 되면 한 해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올해 있었던 여러 일들을 돌이켜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초부터 수개월 동안 한국을 마비시키다시피 한 촛불시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한국 국민의 극단적 반응이었다. 소수의 자칭 전문가들, 진본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이 가공(架空)의 위험성을 날조하였다. 또 촛불시위가 끝난 지금 한국의 진보사회학자들은 촛불시위의 예찬에 여념이 없다. 존재하지도 않은 위험을 놓고 그만큼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으면, 이 사태의 발생원인에 대한 학문적 규명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의 부수현상을 놓고 자화자찬에 빠진 것이다.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공동제안하여 지난 10년 동안 한국정부가 보여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참혹한 무관심’을 어느 정도 덜어내기는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물론 민주당은 아직도 “북한인권”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치를 떨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뇌구조를 촬영하는 기계는 없는지 묻고 싶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을 “노다지”로 표현하며, 그의 실패한 햇볕정책을 ‘노다지 캐는 일’이라는 희한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하기야 햇볕을 아무리 쬐어주어도 옷을 벗지 않았으니, 한국국민의 돈 욕심이라도 자극시켜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다.

지난 12월 11일과 14일 워싱턴포스트는 두 차례에 걸쳐서 완전통제화구역인 14호 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씨의 삶을 그리고 있다. “3000부를 찍은 그의 수기가 한국에서 불과 500부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한국국민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추구에 매몰되어 북한주민들의 처참한 삶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또 “후대의 젊은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한 지옥을 왜 방치하였는지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또 이 기사들에 대한 독자의견란에는 “신동혁씨의 수기를 영어번역 청원을 하자” “신동혁씨를 돕고 싶다”는 글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에 노다지 캐러가자”는 말이 겹치니 필자는 부끄럽다 못해 쥐구멍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이렇게 가난한가?

안경환교수가 위원장으로는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마치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북으로 패주하면서 남쪽에 남겨 놓은 남부군 빨치산처럼 행동하고 있다. 바뀐 정권 안쪽에서 악착같이 저항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임무를 규정하는 현재의 법에 의하자면 북한인권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벌써 오래 전에 스스로 국가인권위원회 법을 바꿔야 함을 역설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임무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철폐는 권고하면서 인권개선에 장애가 되는 법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외국정부의 인권담당부서는 결코 국내의 인권문제에만 업무를 한정하고 있지 않다. 지식인의 교활함은 둔탁한 폭력보다 더 야비할 때가 있다.

촛불시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위험성’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악, 최대 규모의 인권유린’에 대해서 한국의 진보세력들은 역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반응이 차라리 침묵이라면 좋겠지만, 이들은 수단방법을 가지지 않고 세계의 북한인권 개선노력을 방해하면서 김정일정권에 아첨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들이 앞장을 서서 북한인권 시민단체나 인사들을 “극우” “매국노”라고 극언하고 있다. 후대의 역사는 결코 이들의 비열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전 통일부장관 정세현씨 역시 이런 부류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12월 11일 결렬된 6자회담에 대해 “시료채취는 북한이 마지막에 내놓을 수 있는 카드인데 중간에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겠느냐? 갑자기 (부시 행정부의) 임기 한 달 정도를 남겨놓고 시료채취 문제를 검증합의서에 넣겠다고 나온 건 과욕이다. 1993-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북미간 제네바협상 때도 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 시료채취가 허용되었다. 미북간 협상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시료채취를 그렇게 초반에 들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얄미운 것을 떠나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이 주장은 사기나 다름없다. 북핵동결에 그친 제네바합의에서는 북한의 핵물질과 핵프로그램의 신고시점이 경수로의 주요부분이 완성될 쯤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때쯤에 1992년 체결된 “북한과 IAEA간의 핵무기 확산방지조약과 관련한 안전조치 실행(INFCIRC/403)”의 준수가 요구되고, 이 조약 1부 8조에 핵물질과 핵프로그램의 신고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신고가 있으면 검증이 따른다는 당연한 이치가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3단계로 이루어진 북핵폐기의 2단계는 바로 북한이 핵물질과 핵프로그램을 신고하는 절차로 이루어진 것이고, 북한은 이미 1만8천장 분량의 영변원자로 운영일지를 제출하였다. 여기서도 ‘신고가 있으면 검증이 따르는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가 적용될 뿐인데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을 완전히 호도하여 ‘불한당 미국이 불쌍한 북한에게 강압을 통해 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통일부장관이었고 지금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라는 긴 직함을 갖고 있다. 그가 말하는 통일이 무엇인지, 남북화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북한인권부터 촛불시위 그리고 6자회담 결렬에 대한 친북세력의 태도에는 일관된 것이 있다. 그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속여서라도 자신들의 이념적 목표를 쟁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반도에서는 ‘진실과 거짓’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혹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힘겨운 대화 시도라고나 할까. 우울한 연말이다. 독자분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필자를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