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아침 김여정 담화(3·15)를 보도했다. 골자는 ▲한미합동군사훈련 비난 ▲향후 남북대화의 완전 거부 시사 ▲ 미국 바이든 정부의 유화적 대북정책 촉구 등 3가지이다.
“남조선(한국) 당국은 또다시 온 민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을 선택했다. 50명이 참가하든 100명이 참가하든 그리고 그 형식이 이렇게 저렇게 변이되든 동족을 겨냥한 침략전쟁연습이라는 본질과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양 건너에서 우리 땅에 화약내를 풍기고 싶어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 마디 충고한다.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여정 담화는 김정은이 8차 당대회(1.5~12) 사업총화보고에서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다” “남측의 태도 여하에 따라 남북관계 활성화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하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를 요구한 지 2개월여가 지난 시점에 나왔다. 그동안 대남-대미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침묵이 이어져 왔다.
그동안 북한은 그동안 8차 당대회 소집을 통해 핵과 자력갱생, 비사회주의 척결에 기초한 지구전(持久戰) 체제 구축, 이른바 <정면돌파전 시즌2> 추진을 공표한 이후 내부 재정비에 주력해 왔다. 그런 가운데 1월 14일에는 한파 속에서도 열병식을 개최하고 ‘북극성 5ㅅ’ 등 최첨단 전략무기 공개를 통해 핵·미사일 강국의 위상을 과시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대내외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이전에 확정했다. 일종의 배수진, ‘가이드 라인(guide line) 전술’을 구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상황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 문제를 비롯,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review)를 한창 진행하고 있어 말을 극도로 아껴오고 있는 형국이었다고 할수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그들이 요구했던 중지의 수준은 아니지만,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게임으로 진행되고 있어 문제를 삼으면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계산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수준에서 한번 짚어 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2월에 한미합동군사훈련(3.8~18) 실시 발표가 나오고, 최근 실제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북한인권 실태 비난, 문재인 정부의 교류협력 재개 제의 등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었다.
그랬던 북한이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김여정을 직접 내세워 강경한 논조의 담화를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끝나가고 있고, 미국의 신임 국무장관 블링컨의 방한(3.17~18)이 예정되어 있는데 팔장만 끼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얼마 전 성 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아마 수주 이내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던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기초적인 틀이 어느 정도 만들어져 가고 있고, 미국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공세를 날로 강화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북한도 이제 어느 정도의 기싸움을 걸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런 북한의 위협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과 김여정의 수가 너무 보이기 때문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8일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조용히 있다가, 17일 블링컨 국무장관 일행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김여정이 직접 나서 담화를 발표한 것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카드를 활용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이다.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이고, 바둑의 ‘사석(捨石) 작전’과 같은 것이다. 가장 약한 곳을 치고(버리면서) 더 큰 것을 얻으려는 전형적인 이중전술이자 남남갈등(南南葛藤) 조장 전술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싶어하는 남북 간 교류협력은 너무나 작다. 오히려 내부체제 결속에 해(害)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 큰 협상을 통해 체제안전과 경제실리를 동시에 확보하는 게 더욱 효율적이다. 미국과 잘 합의하면, 문재인 정부는 그냥 따라 온다는 셈법이다. 핵도 가지고 경제실리도 얻는 ‘2마리 토끼잡기’는 김정은이 최후의 순간까지 견지하려는 대전략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분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즉 지금까지의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 협상’을 진행하려는 가칭 ‘先 내부단속-핵고도화, 後 대화협상-경제발전’이라는 이른바 <핵-경제건설 병진노선 시즌2>를 모색해 나갈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바이든 정부의 물밑접촉 제의를 계속 거부해 왔다.
“로이터 통신은 13일(현지시간) 익명의 미 행정부 고위관리를 인용해 “2월 중순이후 뉴욕(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을 포함한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부에 접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평양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2012년 3월 14일 연합뉴스)
이 같은 북한의 ‘내부제제 재정비를 우선으로 한 대남·대미 가이드라인 제시-기다리기(wait&see)와 전술’은 바이든의 의회 연두교서 발표 또는 대북정책의 초안이 나올 때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은 이번 담화에서 과거처럼 또다시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혹하는 말을 슬쩍 한자리 깔아놓았다.
“앞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며 감히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군사분야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2021년 3월 15일 김여정 담화/3월 16일 조선중앙통신)
이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는 전술의 전형적 행태의 하나이다. 정부는 북한의 미끼에 또 결려 들지 말아야 한다. 국격을 생각하고 국가안보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를 주면 둘을 달라하고, 무릎을 꿇으면 기어오라고 말하는 게 북한 위정자들의 생리이다.
그럼 향후 북한은 어떻게 행동할까?
북한은 그들이 예고한대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관광 관련기구를 해체하는 위협적 조치로 한국과 미국을 더욱 압박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블링컨국무장관의 방한기간 또는 귀로에 알래스카에서 열릴 미중 고위급회담(3.19~20)에서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관련 발언을 지켜보고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이다. ▲좀더 나아가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도발도 옵션의 하나로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미국을 강하게 자극하여 대미 관계를 대결과 파국으로 몰아가기보다는 핵보유국 위상 과시와 군축회담으로 가기 위한 협상로(road)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한정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일단 17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2+2회담(외무장관/국방장관)결과에 대한 외곽단체 또는 개인 명의의 논평, 김여정 또는 외무성의 담화, 아니면 핵활동의 전략전술적 공개 또는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미북접촉 제의시 수용 등 다양한 강·온 카드를 고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북한의 행동에서 주목해야 할 시기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H조 5개국 예선전’과 ‘7월 도쿄하계올림픽’이다. 월드컵 서울 예선전에 불참하면 0-3 몰수패가 선언되어 월드컵에 참석할 수 없게 되므로 축구가 남북 간 접촉 재개의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일본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7월 도쿄하계올림픽은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기억이 아련한 김정은으로서는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미 당국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조급한 대화 재개보다는 바른 대북 협상안(roadmap)을 한·미·일이 조율하여 성안하는 것이 우선이다. 북한은 이미 8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향후 5년간의 중장기 계획(‘정면돌파전 2.0’)을 수립했다. 따라서 핵·미사일 고도화와 지구전 체제 기조를 계속 견지하면서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김정은 집권 10주년(2022.4), 2025년 9차 당대회·포스트 바이든 행정부 출범 등을 활용하는 큰 그림을 가지고 움직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도 보다 종합적·전략전술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너무 실망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긴 안목을 가지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정공법으로 북한을 관리, 대처해 나가는 것만이 해답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상대( 골칫거리이자 불투명한 미래)일 뿐이고 미국은 우리의 동맹(안보와 국익의 큰 미래)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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