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6일은 사망한 김정일의 79회 생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북한 주민들은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김정일 동상을 참배하고, 국가적으로는 기념보고대회·연회·예술축전·충성맹세모임 등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진행할 것이다.
경제난으로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 엄동설한 속에서도 꽃을 구해 바치고, 국가는 막대한 예산을 김씨 일가 우상화 행사에 쏟아붓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때로는 김정은 위대성 선전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생일을 핵-미사일 도발의 계기로 활용하기도 한다.
과연 이게 정상일까?
사망한 정치지도자의 생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과연 몇 군데나 될까? 통상 망자(亡者)의 생일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예수, 석가와 같이 성인(聖仁)의 반열에 오른 분들만 예외적이다.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정치지도자들도 일반인들처럼 사망일에 간소한 제례나 추모모임을 통해 그 뜻과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왜 북한에서는 사망한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을 거국적으로 기념하고 있을까?
그건 바로 ▲북한이 신정체제(神政體制)이고 ▲세습 지도자 김정은의 부족한 정통성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러나 북한은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최근 김정은이 강조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의 나라도 아니다. 오직 수령 1인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신정체제-전체주의 국가이다. 북한은 해방 이후 전통적인 소비에트형 공산주의 체제로 출발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이 유일(唯一) 독재체계를 구축하면서 기독교의 논리와 조직을 그대로 베껴 체제 운영에 활용하였다.
즉 수령을 하느님(예수)과 같은 유일신으로 자리매김시키고, 주체사상(=성경), 유일령도체계 10대원칙(=10계명), 노동당(=교회), 간부(=목회자), 핵심계층(=신도), 중간·적대계층(=비신도)의 신정체제의 틀을 만들었다. 따라서 북한에서 사망한 수령의 탄생일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3대 세습이 이루어진 곳이다. 대(代) 물림을 통해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이 선대 수령의 그림자를 벗어나 홀로 통치해 나갈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다”(No)가 맞다.
오죽하면 김정은이 죽은 김일성·김정일에게 8차 당대회(1.5~12) 대표증을 수여하는 기상천외한 발상, 귀신까지도 소환하는 모습을 보였겠는가.
“대표증 수여식에서는 먼저 영광스러운 우리 당의 창건자, 건설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대표증을 정중히 수여해드렸다. 전체 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생존해 계실 때처럼 변함없이 높이 우러러 모시고 당대회를 맞이하게 된 크나큰 감격에 휩싸였다.” (2020년 12월 31일 로동신문)

김정은은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2011.12.17)하자 아직 후계수업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여기저기가 망가진 북한호(號)의 선장 역할을 물려받았다. 27살의 젊은 지도자! 당연히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선대의 후광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김일성을 우상화하던 방식을 벤치마킹(benchmarking) 하였다.
러시아의 방부처리 전문가를 초청하여 김정일 시신을 영구보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몽매한 주민들에게는 눈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상징조작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후에 생전에 집무를 보던 주석궁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리모델링한 후 시신을 안치하였다. 그리고 망자(亡者)의 생일을 국가적 명절(‘광명성절’)로 지정하였다. 모든 기관과 가정에 걸려있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도 모자라 전국 각지에 동상과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눈에 가장 잘 뜨이는 곳에는 영생탑을 세우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새겼다. 매일 아침마다 사자(死者)에게 경배를 올리게 하고, 기념일에는 동상을 참배케 하였다. 그리고 핵-미사일 개발 등 유훈(遺訓)의 관철을 독려하였다.
이로써, 북한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들이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인데, 완전히 민폐로만 작용하고 있다. ▲국가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우상화와 핵-미사일 개발로만 집중되고 ▲주민들도 이러저러한 행사와 속도전에 연일 동원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금수산태양궁전, 동상, 기념관, 영생탑 건설 등과 같은 우상화 인프라(infra) 구축 사업에 수십억 불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금수산기념궁전은 3년간 총 8억 9천만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면적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의 17배에 달합니다. 북한은 연평균 5천억 정도를 우상화 시설물 건축을 위해 쓰는데, 이는 전 주민에게 1년치 식량을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며, 생산 시설물에 투자하게 되면 연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예상할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합니다.” (2017년 2월 통일부 작성<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길>내용 중)
이 같은 천문학적인 고정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매년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개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가 추계한 비용의 일례를 보면, “김정일 시신 안치 당시에 들어간 돈은 약 100만 달러, 이후 주 2회 시신을 관에서 꺼내 관리하는데 연 25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2020.12.31 조선일보), “불꽃놀이는 통상 30억~200억 원이 소요되는데, 20억 원으로 가정해도 전주민의 하루치 식량을 살수 있는 금액이다” (2019.2.2 KBS)고 알려졌다.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우상화 놀음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이 같은 반인륜적-시대착오적 행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을 거짓과 압제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1분 1초라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당국에게는 우상화와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의 일부라도 주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대로 돌리라고 촉구해야 한다. 주민들에게는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하여 진실을 알려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 주민이 아닌 김정은만을 상대하려 하고 있다.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전세계인들의 우려는 애써 눈감고 있다. 오히려 진실을 알리는 대북전단살포 활동을 법으로 금지시키고, ‘먼저 온 통일’인 3만 5천 탈북민들을 평화와 통일의 장애물로 인식하는 듯하다. 김정은이 핵-미사일로 위협해도, 온갖 욕설로 비난해도 그저 참기만 한다. 주민들이 고문받고 잔인하게 공개처형되어도 못 본 척 넘어간다. 오직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척에만 목을 매고 있다.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며 대화와 교류협력의 돌파구를 찾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번지수가 틀려도 너무 틀렸다. 정말 이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국내외의 양심있는 인사나 단체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 전개하고 있는 “북한에 진실의 바람을 불어넣고 열악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헌신적 활동”을 반북대결이나 정권붕괴 전술로 오도(誤導)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이 국가폭력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안전해지고,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는 인도적·당위적 조치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주민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영문도 모른 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짐승처럼 학대받고,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정치행사나 속도전 전투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족, 평화, 통일과 같은 레토릭(rhetoric) 만을 외치며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상적·감상적으로는 당연히 옳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김정은 정권과 유사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 과연 당신은 참을 수 있을까? 정부가 처한 특수한 상황으로 너그러이 봐줄 수 있을까? 아마 촛불을 들을 것이다.
불의를 보고 참아서는 안 된다. 맞서야 한다. 성추행범을 보고 분노하는 심정으로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행동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터는 일에도 집중해야 하지만, 인류보편적 가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국제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과 NGO는 말로 하든, 글로 쓰든, 행동 하든, 독재자에게 경고하고 맞서야 한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의 진정한 정부이고 시민이다.

김정은에게도 촉구한다.
당신은 젊은 지도자이다. 어느덧 집권 10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그간 손에 피를 묻히며 홀로서기에도 성공했고 핵도 사실상 손에 쥐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신(神)에서 인간(人間)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쉽지 않은 결심, 노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갈 때이다. 독재자의 길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망자를 보내고, 유훈의 그림자를 벗어나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개혁·개방의 길≫, ≪남과 북이 함께 가는 길≫! 생각처럼 그렇게 위험한 길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평화와 공존공영을 갈망하는 대한민국이 있고, 북한도 그간 예방주사(vaccine)를 맞지 않았는가. 벤치마킹할 중국-베트남도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DNA가 있지 않는가. 북한에서도 한강의 기적처럼 ≪대동강의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당신과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경제(행복한 주민) 이다. 평생을 냉전논리, 피포위의식 속에 살다간 선대(先代)를 넘어 세계와 공존공영하는 새 지도자(new leader)의 길로 가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 북한의 표현대로 ≪단번 도약≫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반대로, 당신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길을 계속 고집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박과 고립을 넘어 내폭(內爆)으로 정권의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배를 띄우는 것도 민심의 바다이고, 배를 뒤집는 것도 민심이다”라는 격언을 그냥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이 지금까지는 참고 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경제가 악화되고 마음속 깊은 곳의 분노가 폭발하게 되면 ‘아랍의 봄’(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연쇄적인 반정부 운동)과 같은 쓰나미로 변하여 김정은호(號)를 삼켜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사의 흐름을 크게 왜곡시킨 망자의 생일에 즈음, 무엇이 인륜이고 정의인지? 어떻게 하면 남과 북이 함께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갈 수 있을지?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아픈 말도 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우리말처럼 지나온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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