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갖고 묵묵히 일하며 대한민국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 탈북자에게 있어선 최고의 성공 같아요. 감사하고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삶 아닐까요.”
TV와 책을 통해 평범하거나 혹은 비범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국내 입국 탈북자들은 북한 독재정권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자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지난 5월 말. 고층 빌딩을 벗어나 고즈넉한 한옥이 즐비한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탈북한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말한 이가연(27. 사진) 씨를 만났다.
이 씨가 이같이 말할 수 있는 데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 역시 여느 탈북자들처럼 남한에 와서 겪은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때론 좌절하고 원망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이처럼 자유를 누리며 생활할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해 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내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이 씨는 대학생활과 봉사활동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짬짬이 시간을 내 글을 쓰기 시작해 2012년 ‘대한문예신문사’를 통해 등단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경기도청에서 진행한 통일시 공모전에서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시집을 집필 중이다.
황해남도 해주에서 살다가 2009년 12월 탈북한 이 씨의 남한 생활은 모든 게 낯설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아파트 17층에 살게 되었는데 엘리베이터에 ‘만원’이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만 원을 내야 하는 줄 알았죠. 그래서 보름이 넘도록 17층을 걸어올라 다녔어요”라며 멋쩍게 웃는 이 씨의 웃음 뒤로 남한 정착 생활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 씨는 계속해서 남한에 정착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이어갔다. 그녀는 “학원을 가는데 지하철에서 길을 몰라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사람들에게 묻는데 사람들이 전부 저를 피하더라구요. ‘내가 북한 사람인 줄 알고 싫어서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학원을 가다 말고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어요.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본 한국 사람들은 다 상냥하던데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씨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말투’와 ‘억양’을 꼽았다. 특히 그녀는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이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한번은 손님이 많이 와서 사장이 ‘손님 받아라’라고 해서 식당 밖에서 손님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장이 바쁜데 밖에 있는다고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 씨가 남한 정착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정착하게 된 계기는 바로 ‘봉사’였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 당당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봉사활동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구나를 알 수 있었어요. 봉사를 통해 타인만이 아닌 자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라며 남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봉사활동 중에 만난 한 남성은 이 씨 인생에 변환점이 되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 남성의 꿈은 국무총리였다.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 남성을 보면서 이 씨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는지 알게 됐다. 이후 그녀는 매사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대했다.
“한국에 와서 북한 출신이라고 받았던 인격적 모욕이 그것이 결코 나를 향한 모욕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느껴요. 1년 정도 지나니까 한국 사회와 사람이 보이면서 조금은 알겠더라구요. 물론 더러는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이 씨는 봉사 단체인 ‘허그네이션(hugnation)’ 활동뿐만 아니라 장애아동보육시설인 ‘가브리엘의 집’, ‘푸르미 공부방’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빠르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남한 사람들을 피하지 말고 잦은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남한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틀린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구요. 그 다름을 인정하게 될 때 비로써 남한 사회에 적응했다라고 볼 수 있거든요.”
이 씨는 요즘 바쁜 시간을 쪼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시집’을 내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그에게 직접 쓴 시 낭송을 부탁했다. “빛이 있어 꽃이 피고, 빛이 있어 새가 날고, 빛이 있어 내가 웃고. 내가 산다.”
탈북 후 10개월간의 중국 생활을 거쳐 그토록 그리던 한국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이 씨는 가슴에 얹혀있던 무언가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분명 깜깜한 새벽이었는데도 어디선가 환한 빛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의 느낌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남한 생활에서 느낀 감정들을 짧은 글로 적어두었고, 이 글들이 모며 곧 이 씨만의 ‘시집’이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를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북한 주민들 간의 따뜻한 정(情), 그리고 남한 시민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보다 제가 조금 일찍 한국에서 살았을 때의 경험을 글로 남기고 싶어요. 내가 한국에 와서 배운 자유, 그 자유에 대해서 알려 주고 싶어요”라며 시를 통해 통일 이후 남북 간의 화합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오늘도 끊임없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 씨. 그녀는 대한민국은 흘린 땀과 노력만큼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감사하다며 웃음을 짓는다.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 충성한다고 말을 잘해야 해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말을 잘해야 공화국 영웅도 되고 노력영웅도 돼요. 하지만 한국에선 달라요. 한국에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도 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