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김정은 체제 2기 출범, 향후 대내외 전망은?

최고인민회의
1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1일 회의가 진행됐다고 12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4월은 각종 이벤트로 시작된 달이다. 특히 우리 정부에게 각종 청구서가 쏟아졌다. 한반도 정세는 4월 초부터 시작된 굵직한 각종 행사와 이벤트로 시작됐다. 먼저, 북한은 지난 9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1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연이어 개최했다. 그리고 11, 12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진행했다. 동시에 미 워싱턴에서는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됐다. 4월 정치일정의 포문은 북한에서 열었다.

9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 제출할 2018년 국가예산집행정형과 2019년 국가예산에 대해 토의와 승인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자력갱생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 제출할 국가지도기관구성안 ▲조직문제가 토의됐다. 여기에서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을 비롯한 국가지도기관 구성안, 즉 대규모 인사이동이 발표됐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의 백미는 단연 김정은의 ‘시정연설’에 있었다. 전반적으로 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전체회의를 통해 최고인민회의의 주요 안건을 미리 결론내리고 최고인민회의라는 대의기구를 통해 결정사항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다만, 한미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모든 결정사항이 빠르게 결정되고 발표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김정은 체제 2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대규모 인사이동, 특히 세대교체가 단행됐다. 둘째,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은의 입장이 정리되어 발표됐다.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결렬 이후 자신의 입장을 한미 양국에 전달했다. 셋째, ‘자력갱생’을 현재의 경제 제재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내세웠고 그 과정에 군수경제의 민수경제화 내지 군수경제의 외연을 넓혀 민수경제 영역까지 아우르는 형태의 ‘비상’경제시스템을 가동하려는 의도를 엿보였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등장한 김정은 체제 2기는 기존 김영남, 최태복, 양형섭으로 대표되는 당정 원로그룹의 퇴진했고 신진인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대규모 인사이동의 낌새는 10일 제4차 전원회의에서 내각총리인 박봉주를 당 부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나타났다. 박봉주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내각총리로서 그 종료시점을 1년여 남겨 둔 상황에서 갑자기 소속을 당중앙위원회로 옮긴 것이다. 부위원장 직책으로 볼 때 아마도 경제부문 담당 부위원장에 임명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조치는 당정 경제부문의 총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1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1일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위원에 임명된 인사들. /사진=노동신문 캡처

대규모 인사이동에서 나타난 특징은 단연 신진세력의 등장과 테크노크라트의 약진이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개발과정에서도 과학자 및 기술자들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로 주목을 받았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신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낙점된 최룡해와 신임 내각총리에 임명된 김재룡이다. 최룡해는 새로 신설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 임명되면서 실질적으로 국무위원회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북한에서 ‘제1’ 이란 직책이 들어가는 경우는 책임자급에 해당하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룡해의 인사이동은 그의 영역이 당에서 국무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영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직책과 기존 직책인 조직지도부장의 무게감은 실질적 권한 차원에서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최룡해가 기존 원로들이 모여 있던 최고인민회의에 입성했고 김영남, 최태복, 양형섭 등 ‘올드보이’들은 양형섭이 최고인민회의 개회사를 맡는 것으로 그 소임을 끝냈다. 이들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신설된 최고인민회의 ‘고문’ 직책으로 물러났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존 대미라인이던 김영철, 리용호, 최선희 등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면서 국무위원회 기구의 성격이 국방, 안보, 외교, 대남 책임자들이 집결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형태를 갖췄다.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장 선거, 국가지도기관 선거, 헌법 수정보충, 예결산 등을 했다고 전했지만 수정된 헌법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최룡해와 함께 부각된 신임 내각총리 김재룡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내부인물’로 자강도 당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발전소 건설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봤을 때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확한 나이나 이력도 알려지지 않았고 △당 정치국 위원 △자강도 당 위원장 △당 중앙위원 △평북도당 비서 정도가 알려진 내용이다. 김재룡 내각총리 등용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과거 내각총리와 자강도당 책임비서를 역임했던 연형묵의 사례다. 연형묵은 공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였는데 1991년에는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연형묵은 총리로 있을 당시 경제개혁을 실시하며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나 1992년 12월 총리직에서 물러나 자강도 당책임비서로 자리이동을 했다. 당시 인사이동을 두고 좌천이다, 아니다를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북한의 군수공업 성지인 자강도를 책임지는 자리가 어떤 면에서는 내각총리보다 월등한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좌천성 인사는 아니었다. 결국 연형묵은 김정일의 군수공업 사랑을 등에 업고 자강도 군수공업의 성과를 내면서 김정일의 신임을 받게 되었고 1998년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강계정신’이라는 유명한 구호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하여간 김재룡의 내각총리 기용은 여러 면에서 ‘고난의 행군’을 겪던 시기 자강도 당 책임비서(위원장)를 지냈던 연형묵의 사례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와 관련,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양형섭이 개회사를 통해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로선(노선)이 빛나게 관철됨으로써 국가핵무력완성의 력사적(역사적) 대업이 성취”되었다고 하여 북핵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금칙어’였던 ‘국가핵무력’이 다시 언급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 시점에서 김정은이 대화와 도발의 중간점에서 여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자격심사위원회 위원장인 김평해는 보고에서 이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구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공장, 기업소 노동자가 16.2%, 협동농장원이 9.6%, 군인이 17.2%, 김일성훈장과 김정일훈장 등 유훈자가 20.7%, 공화국영웅, 노력영웅칭호를 수여받은 사람이 13.5%라고 밝혔고 이 가운데 교수, 박사, 기술자, 전문가 등이 92%이며 대의원의 94.8%가 대졸의 학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연령별로는 39세 이하가 4.8%, 40~59세가 63.9%, 60세 이상이 31.3%이며 여성은 17.6%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이번 대의원들의 구성은 고학력자의 중년층 남성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의 방점은 김정은이 찍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과 현 경제문제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작심발언을 하고 나섰다. 김정은은 과거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시정연설을 통해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실현하는 데서 우리 앞에 나서는 기본투쟁과업은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고 말해 최근 개정된 노동당 규약 서문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다. 이어서 “사회주의강국건설은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의 력사적 단계이며 그것은 김일성-김정일주의 국가건설사상을 철저히 구현함으로써만 빛나게 완성될 수 있습니다”고 하여 김정일 시기에 사장되었던 ‘사회주의완전승리’라는 용어를 다시 부활시키면서 ‘사회주의완전승리’가 사회주의강국건설과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것임을 언급했다. ‘사회주의완전승리’의 재등장은 많은 부분에서 북한체제가 사회주의시스템의 보수적, 원론적 관점으로 회귀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의미로 해석된다.

계속해서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결렬에 대한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면서 “회담장에 나와서 한편으로는 관계개선과 평화의 보따리를 만지작거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제재에 필사적으로 매여달리면서 어떻게 하나 우리가 가는 길을 돌려세우고 선 무장해제, 후 제도전복야망을 실현할 조건을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면서 불신을 내비쳤다. 이어 남북관계와 관련, “엄중한 정세를 돌려세우고 조국통일을 위한 새로운 려정의 출발을 선언한 대단히 의미가 큰 사변이였습니다”다고 평가하면서 “남조선(한국)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여야 합니다”고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제재준수’라는 원칙을 확인한 데 이어 북한으로부터 남북경협재개라는 또 하나의 압박카드를 받은 셈이다.

김정은은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해 “나는 이러한 흐름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고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말하면서도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고 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했다. 트럼프가 자주 사용하던 외교적 언술을 그대로 따라했다. 할 말은 다하면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면서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고 최후통첩식 입장을 밝혔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결렬 이후 절치부심한 수령으로서 자신의 실책을 한미 양국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자신은 기존입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그리고 핵회담을 올해 말까지 장기적으로 보고 자력갱생을 통해 우선 급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자리였다. 그러한 의사표명을 하는 자리로 최고인민회의장을 빌린 모양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내부적으로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빠진 채 진행된 점, 최룡해가 원로가 맡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직책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과거 김영남 시절과는 다르게 위상이 하향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고인민회의는 기존의 ‘거수기’ 성격이 한 층 더 심해지면서 상징적 의미만 있고 실질적 권한은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높고 국가지도기관으로 불리는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내각의 배분에서 국무위원회가 외교, 국방, 공안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내각은 경제문제에만 올인하는 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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