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여정 “전단 안 막으면 혹독한 대가”…정말 전단이 문제일까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시 월곶리 성동리에서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또 개인 명의의 담화를 냈다. 청와대를 저능하다고 했던 지난 3월 독설 담화부터 시작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에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우리 정부를 심하게 몰아댔다.

지난 5월 31일 탈북민들이 대북 전단 수십만 장을 북한 지역에 날려보냈다며 ‘몹쓸 짓’을 방치하는 남한 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요 하는 미명하에 방치한다면 남조선(남한) 당국은 머지 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악의 국면과 관련해서는 가능성들까지 예시했다. 우리 정부가 응분의 조치를 하지 못한다면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업지구 완전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도 방법을 제시했다.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됐으니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살포를 금지하게 하는 법을 만들든지,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전단살포를 어떻게든 막으라는 것이다.

전단 살포가 진짜 문제일까

북한은 왜 지금 전단살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물론 대북 전단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는 문구들이 들어있고, 요즘은 1달러 지폐들까지 동봉해서 보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돈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반북 전단을 읽어보는 등 체제에 위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신경 쓰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탈북단체가 최근 들어 전단 살포를 비공개로 전환한 이후 정부와의 충돌도 줄어들었고 북한의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과거에는 탈북단체가 사전에 전단살포 계획을 기자들에게 알리고 이로 인해 논란이 되면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하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탈북단체가 최근에는 새벽에 비공개로 전단을 살포한 뒤 사후에 자신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단살포를 해왔기 때문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주로 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지난해에만 10여 차례 전단을 북쪽에 보냈고, 올해에도 5월 31일까지 세 번이나 북한에 전단을 보냈다고 말한다. 언론에 공개가 많이 안 됐다 뿐이지 계속해서 전단을 보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진행돼오던 전단살포에 대해 북한이 김여정 명의로 강하게 반발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마리는 역시 김여정 담화에 들어 있다.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북남(남북)합의를 진정으로 귀중히 여기고 철저히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우리에게 객쩍은 호응 나발을 불어대기 전에 제 집안 오물들부터 똑바로 줴버리고 청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책임은 남한에 있다

총선이 여당의 승리로 끝난 뒤 정부는 다시 한번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답보 상태다. 통일부는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겠다는 입장이고, 통일부 장차관은 판문점, 한강하구, 대성동 마을들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방역협력이든 뭐든 북한이 호응만 하면 뭐라도 할 수 있는데, 북한이 반응하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지금 주장하는 것은 남북관계가 개선 안 되는 이유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있으니 책임을 북한에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대외선전매체들을 통해 나온 북한의 입장을 보면,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이 안 되는 이유가 남한의 대미추종과 동족대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사건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한미군사훈련, F-35A 전투기 도입 등 무력증강을 계속하는 것이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오늘 김여정이 문제 삼은 대북 전단 살포는 이상의 이유에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일 뿐이다.

물론, 북한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주장대로 하면 우리는 한미동맹 깨고 한미훈련, 전투기 도입 다 하지 말아야 하니 안보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도 사실 남한이 북한의 요구사항 못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왜일까? 결국 지금 시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미국 대선 전까지 북미대화도 안 될 것이고 유엔 제재 하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 남한과 관계를 개선해서 북한이 이득 볼 것은 별로 없다.

북한은 김여정 담화를 노동신문에 게재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대남 비난 담화를 실었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냉랭해질 수 있음을 주민들에게 교육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 5월 8일 “적은 역시 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인민무력성 대변인 담화도 노동신문에 실렸는데, 북한이 주민들을 상대로 남북관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도록 분위기 조성에 들어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 민간단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면서 다음 수를 놓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김여정 담화가 나오자마자 “접경지역 국민들의 생명,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며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법률정비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혀 대북 전단 살포를 규제할 법률을 마련할 뜻임을 시사했다. 북한이 대북 전단에 강하게 반발하는 만큼 전단살포를 막아 일단 급한 불을 끄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을 비난하는 근본 원인이 전단살포에만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이런 조치로 상황의 변화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상대방이 몰아친다고 우리가 급하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계속해서 다른 요구를 해올 수도 있다. 북한이 지금 상황을 어떤 기조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좀 더 크고 넓게 상황을 지켜보고 긴 호흡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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