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이산상봉 시작…국군포로·전시납북자 가족도 포함

89명의 남측 이산가족과 동반 가족 등 197명은 오늘 오후 3시부터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가족 185명과 감격의 첫 상봉을 시작했다. 이중에는 국군포로 가족과 전시 납북자 가족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와 전시납북자 가족 역시 여느 이산가족과 다름없이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복 여동생을 만나는 신종호(70) 씨는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끌려가고 삼촌은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해서 현충사에 모셔졌다”며 “이북에 이복 동생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상봉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눈물이 북받치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며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어 봐야겠다”고 들뜬 마음을 보였다.

이번 행사에서 이복동생들을 만나는 이달영(82) 씨도 “같이 근무했던 사람으로부터 (아버지가) 국군포로로 갔다는 것은 전해들었다”며 “아버지가 북에서 (홀로) 돌아가셨으면 안 좋았을 텐데, (북한에서) 아이도 낳고 그래서 좀 생존해 계셨으니까 좀 다행이다 싶다”고 말했다.

1.4 후퇴 때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가 헤어진 형의 자녀들을 만나는 최기호(83) 씨도 “한자를 많이 알아서 청주에서 가장 큰 한약방에서 일을 하다가 끌려갔다”며 “당시 폭격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조카라도 상봉이 되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납북된 형 이재억 씨가 사망해 조카들을 대신 만나는 이재일(85) 씨도 “형이 1950년 6∼7월께 18세의 나이로 납북된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후 이 씨의 부친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다가 사라졌다’며 앓기 시작했고 납북된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다가 1954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사연을 전했다.

또한, 세월이 흘러 변해버렸을 가족의 얼굴을 확인할 사진이 한장이 없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최기호 씨는 “맏형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이번에 북측 조카들이 사진을 가져다주길 간절히 원한다”며 “그땐 형편이 어려워서 사진도 못 찍어 우리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은 형이 20살 인데 그 이후 어떻게 나이 들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억 씨는 “집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형님 사진 한 장을 누군가 들어와서 훔쳐갔다”며 “이번에 조카가 진짜 조카가 맞는지 확인할 증거가 형님 사진인데 그게 없어졌으니 조카를 만나도 형님 얼굴이 남아 있는지 느낌으로 알 수밖에 없게 됐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남측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준비하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을 선정해 북측에 생사확인을 의뢰했고 이 중 21명의 생사가 확인돼 6가족의 상봉이 성사됐다. 2015년 10월까지 20차례 진행된 상봉에서 남측은 350명의 국군포로와 납북자 생사를 북측에 의뢰해 112명이 확인됐고 이 중 54가족이 만났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과 북은 더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정기적인 상봉 행사는 물론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화상상봉·상시상봉·서신교환·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을 더욱 확대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남과 북이 해야 하는 인도적 사업 중에서도 최우선적인 사항”이라며 “특히 오래전에 남북 합의로 건설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 취지대로 상시 운영하고 상시 상봉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