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주민 굶주림에 허덕이는데…당국은 ‘최고존엄’만 강조

평양종합병원
평양종합병원 건설 현장에 지원물자가 도착하고 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4월 보도했다. 사진은 현장 근로자들이 지원 물자를 옮기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최근 북한에서 국가적 건설에 자원했는데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쫓겨나는 사례가 종종 포착되고 있다. 최근 데일리NK 평안남도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중요건설장에 노력을 보충하는 과제가 하달되었는데 하겠다는 주민들이 생각보다 많아 관계자들도 놀랄 정도였다. 필요 노력 1만 9000여 명 중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해 자원한 주민들이 무려 40%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경제난으로 먹을 것이 떨어진 주민들이 건설장에 나가 배라도 채우려는 목적으로 자원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하지만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고,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정신·육체적으로 모진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공사장에 자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공사장에 자원한 이유는 바로 생존을 위해서다. 공사판에 나가 고생을 해도 한 줌의 통 옥수수로라도 배를 채워 목숨이라도 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직장에 출근하거나 집에만 있어서는 도저히 배도 채울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그렇다면 시장에 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이 없어 굶어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90년대 중반에는 국가의 배급만 바라보다 그랬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장이 형성되어 웬만한 사람들은 시장을 이용하여 생존은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른 주민이 계속 늘어나는 것일까?

일부 사람들은 국제사회 지속된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경 봉쇄로 인한 경제난에서 원인을 찾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폐쇄적이고 경직된 북한의 경제구조가 문제다. 그 중에서도 최고위급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불평등한 소득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북한에서 소득의 대부분이 소수의 권력층에 집중되어 있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극히 소액의 소득을 얻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인민의 피땀으로 생산된 다량의 재부가 고위권력자들에게 고급 자동차, 화려한 주택 및 유행하는 의류 등을 제공하여 그들의 변덕을 만족시키지만 반대로 상당수의 일반 주민은 초보적 생존조건조차 충족되지 못하여 의식주가 열악한 상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지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를 읽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에서 소득의 불평등 분배는 왜 해악일까? 그것은 국민의 생존을 위해 더욱 절실한 분야는 무시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충족된다는 점에서 명백한 자원 낭비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 세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수도 평양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대 다수의 가난한 지역,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는 적당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성장에 지장을 받고 있다. 거기에 교육기회까지 박탈당함으로써 그들의 자립능력은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북한에서 이러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변화가 시급하지만, 이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심지어 그들이 바로 3대 세습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있는 김 씨 일가라는 점에서 난제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김정은은 ‘최고 존엄’으로 각인되고 있다. 최근 들어 여동생 김여정을 내세워 각종 대남(對南) 협박을 일삼고 있는 이유도 이를 남조선(한국)이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 정도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말로라도 이야기하던 ‘이민위천(以民為天, 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김)’은 이제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이렇듯 이 최고위층의 존재는 변화를 통한 성장을 가로막는 중대한 사회악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