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왜 갑자기 대남 총책? “빠른 시일 내 혁명 업적 필요”

北 고위 소식통 "김여정 후계자는 아냐, 김정은 아들 자랄 때까지 정국 안정화 역할"

김정은 김여정 이희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난해 6월 12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남북 간 통신선을 전면 차단하고 대남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하는 등의 대남 강경 조치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총괄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혁명 업적’을 쌓기 위해 김여정이 대남 총책을 맡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내부 고위 소식통은 14일 데일리NK에 “(당국이) 최근 김여정 동지의 ‘혁명 실록 쌓기’ 작업에 돌입했다”면서 “오빠(김정은 국무위원장)처럼 군(軍)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같이 선전선동부에서 권력을 넓혀 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이 선전선동부에서 당조직 생활을 시작하고 선전선동부 과장, 부부장, 부장을 거쳐 선전 담당비서까지 맡으며 후계자로서의 업적을 쌓아갔던 것처럼 김여정도 선전선동부를 권력 확대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김 위원장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제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니며 군 관련 체제를 습득했고,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면서 공식 후계 구도에 올랐다. 이후 인민무력성 6호동 작전부에서 군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후계자로서의 권력을 공고히 해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여정은 여성이기 때문에 군 경력을 통해 정치적 권력을 확대하기가 쉽지 않아 전쟁을 가상한 대결 구도에서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대남 사업을 통해 이른바 혁명 업적을 쌓으려는 것이라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에 후계 준비 필요성 대두

김여정의 혁명 업적 필요성이 대두된 시점은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문제가 발생했던 지난 4월 이후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는 그 누구도 최고지도자의 유고를 가정하거나 그 이후를 준비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 스스로가 비상사태를 준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감지됐던 2008년부터 김 위원장의 후계자 수업에도 속도가 붙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여정이 빠른 시일 내 혁명 업적을 쌓고 인민군과 당(黨)은 물론,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등 외곽조직의 조직적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대남 강경 조치가 더욱 높은 강도로 급작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여정 명의의 대북전단 비난 담화를 발표한 뒤 이튿날(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연락사무소를 결단코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8일 남북연락사무소 연락이 일시 중지된 데 이어 9일에는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지 3시간 만에 남북 간의 모든 통신을 단절했다.

이후 김여정은 13일 발표한 담화에서 한국과 확실하게 “결별할 때가 된 듯 하다. “대적사업관련부서들에 다음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대남 도발을 예고하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대남 기조 전환, 北 조급함 드러내

대북전단 문제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를 명분 삼아 순식간에 대남 강경 기조로 돌아섰다. 맥락적 설득력이 미흡하고 전개가 급작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당국이 조급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김여정은) 백두산 줄기(백두혈통)이기 때문에 다른 간부나 조직의 동의 없이도 권력 확장이 가능하지만 전인민적 지지를 부각시킬 업적이 급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혁명 원로들이 치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당과 군대, 인민들에게 제1부부장의 업적 선전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혁명 원로란 당, 군 등 각 권력기구에 포진해있는 핵심 간부들로, 이들은 겉으로는 김여정의 정당성과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속으로는 ‘김여정이 사상적 지시를 내릴 순 있지만 기술실무적인 지도 경험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 내 고위간부들 “김여정, 절대 북한 후계자 될 수 없어”

다만 현재 김여정의 권력 확장을 위해 전개되고 있는 선전선동부의 일련의 조치들은 김여정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한 작업은 아니라는 게 복수 북한 고위 소식통의 증언이다.

고위 간부들은 북한의 유일한 후계자는 현재 12세로 알려진 김 위원장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단지 김여정은 어린 후계자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수렴청정(垂簾聽政, 나이 어린 세자가 임금이 되었을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국정을 대신하는 정치 형태)을 준비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김여정의 권력 확대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김여정을 자신의 사상과 의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간부라고 칭찬하면서 그의 성과를 드러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편,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현 상황에서 대남 갈등 조장이 내부 동요 차단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김여정의 대남 때리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