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전례 없이 혹독한 한 해였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 그리고 태풍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 등 삼중고에 시달린 한 해를 보냈다. 북한 당국은 대내외 위기에도 불구하고 ‘셀프 고립’을 통해 정권 보위에 전력투구했으며, 이 같은 기조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인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올 한 해 계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년 초부터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면서 한반도도 바이러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같은 환경은 북한 당국에 민심의 동요를 잠재우고 자칫하면 변란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가뜩이나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처방은 ‘셀프 고립’으로 나타났다.
으레 그랬듯이, 북한 당국은 대내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과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한국에 대한 포문을 연 것은 김여정이었다. 김여정은 3월 3일 북한군의 화력전투훈련에 청와대가 유감을 표하자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저능하다’는 등 거친 언사로 맹비난하며 험난한 남북관계를 예고했다. 석 달 후인 6월 4일엔 한국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더니 남북 간의 모든 통신수단을 차단하고(6월 9일) 급기야 6월 16일엔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절연할 듯한 결기를 보였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대남 위협의 강도를 높인 데에는 정권 안보를 위한 고려가 작용했다. 먼저 김여정이라는 백두혈통을 앞세워 대남 위협을 고조시킴으로써 주민들에게 정권의 권위를 재차 확인시켰고, 주민들에게도 대남 적개심을 고취시키며 민심 이반을 차단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 당국의 의도는 지난 7월 탈북민 월북 시 개성시를 완전 봉쇄한 사실이나 9월 한국 공무원을 해상에서 사살한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명분은 코로나 방역을 위한 조치였다고 하나, 기실은 민심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과잉 대응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주민들에게 대남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있던 북한 당국으로서는 탈북민이나 한국 공무원을 유입시켰을 경우, 주민들이 ‘불순사상’에 감염되거나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될 지 불안했을 것이다. 이에 북한 당국은 주민감시와 통제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지난 12월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12차 전원회의에서 새로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하 배격법)’이 그 같은 북한 당국의 의도를 명징한다.
‘배격법’은 자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어 한국 라디오를 듣거나 USB나 SD카드로 외국영화를 시청하는 주민들은 모두 사회주의 사상을 무너뜨리려는 반동으로 잡아들이겠다는 포고문과 같다. 외부 정보를 접촉하는 이들을 반체제 죄목으로 걸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이 법에 따라 중앙당 39호실 산하 수산기지 소속 최모(40) 선장이 라디오 방송을 듣다 북한 당국에 걸려 총살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만큼 북한 당국이 주민 통제와 민심 이반 차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되고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와중에 또 하나의 악재가 북한을 덮쳤다. 지난 8월 태풍과 수해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일례로 북한의 대표적 광물 생산지인 함경남도 검덕지구가 지난여름 태풍 피해로 손실액이 1000억 원을 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여느 때보다 초라한 당 창건 기념일을 보낸 북한 당국은 전국 각지에서 80일 전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수해 복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대규모 건설공사에 주민들이 노력동원이라는 이름하에 강제 동원됐다. 주민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그에 따라 정권 안보의 필요성은 더욱 돈독해졌을 것으로 사료된다.
주민들을 더욱 기막히게 한 것은 북한 당국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지원 의사를 모두 거절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내세운 명분은 자력갱생의 길을 걷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은 ‘셀프 고립’의 다른 말이었다. 김정은은 올해 들어 당 회의(당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정무국 회의)만 19회 개최하며 “전염병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와 틈을 완전 봉쇄하라”고 지시했지만, 그 같은 지시는 사실 “외부 사상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와 틈을 완벽히 차단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에게는 외부 사상이 곧 헤어날 수 없는 전염병이다. 국경을 굳게 걸어 잠그고 ‘방역 안보’를 강조하고 있지만, ‘배격법’을 제정하고 주민들에게 서면으로 생활총화를 강조하며 80일 전투에 불참한 사람들을 단속하는 규찰대를 조직한 사실은 모두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시행하는 정권 보위 조치이다.
이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해 김정은은 조직정비와 인사개편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더욱 강화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올해 초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 김여정에게 대남, 대외 업무를 분장(分掌)시키고, 지난 8월에는 ‘조직행정부(추정)’라는 사법/공안기관 통제 기구를 신설했으며,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장과 김재룡 조직행정부장,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박정천 총참모장, 최부일 군정지도부장, 그리고 박봉주 당 부위원장 및 김덕훈 총리 등 핵심 측근 등을 중용하며 정권 보위를 더욱 돈독히 다져나갔다.
올해에 그랬듯이 김정은은 내년 신년사 발표도 생략할 개연성이 짙다. 올해에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로 신년사를 대체했지만, 내년에는 8차 당 대회로 갈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 바 있다. 신년 초에 개최될 8차 당 대회에서도 김정은은 코로나 방역의 중요성과 경제발전 계획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코로나 확산 국면이 계속되고 북한 경제가 하향곡선을 멈추지 않는 한, 북한 당국의 초미의 관심사는 주민들의 실생활 걱정이 아닌 정권 보위가 될 것이다. 이 점은 ‘배격법’의 제정과 ‘조직행정부’의 신설에서 잘 나타난다.
송재윤 교수(캐나다 맥매스터 대)의 지적처럼 정적을 제거하는 특별기관의 창설은 독재정권이 지니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외부사상의 유입을 차단(배격법)하고, 정적을 제거함(신설 조직행정부)으로써 북한 당국은 ‘김정은 독재’를 완성하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남북관계 역시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현재의 경색 국면은 계속될 것이고, 8차 당 대회를 통해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든 북한 당국은 셀프 고립이라는 퇴행의 길을 고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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