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설비는 밀된장용인데 생산된 제품은 옥수수된장?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월 23일 문덕군 상팥농장에서 밀, 보리 농사 결속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당국이 주민의 주식 구조를 기존의 쌀·옥수수 중심에서 쌀밥과 밀가루 음식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식료품공업 부문에서도 간장과 된장 등 장류의 원료를 기존의 콩이나 옥수수에서 밀로 대체하려는 사업이 진행돼 왔다. 그러나 정책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안남도 소식통에 따르면 문덕군과 숙천군, 평원군, 안주시 등 일부 지역의 식료품공장에서 생산된 된장은 밀된장이 아니라 옥수수된장이라고 한다. 밀된장 생산설비를 갖춰 놓고도 실제로는 옥수수를 원료로 된장을 만들어 주민들 사이에서 “설비는 밀된장용인데 왜 옥수수된장을 생산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제품 품질의 문제를 넘어 북한의 식량·농업 정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된장은 전통적으로 콩을 주원료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북한에서 생산되는 콩은 식용유와 두부, 콩나물, 가공식품, 가축 사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일반 주민에게 공급할 장류 생산에 충분한 양을 투입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지방 식료품공장에서는 콩 대신 옥수수를 섞거나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된장을 생산해 왔다. 데일리NK는 2024년에도 메주콩 된장으로 표시된 제품에 옥수수 알이 섞여 있었던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간부에겐 1등급, 노병에겐 3등급 식품 공급했다가 결국…)

북한 당국은 이러한 원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밀을 선택했다. 북한은 2021년 이후 옥수수 의존도를 낮추고 쌀과 밀 중심으로 식량 생산 구조를 바꾸겠다는 방침을 강조해 왔다. 2023년에는 지방공업성 연구기관이 각 지방을 돌며 밀간장과 밀된장 생산 기술을 보급하고, 제품의 맛과 품질을 높이기 위한 기술 기준도 마련했다.

문제는 밀된장 생산설비를 늘리는 속도를 원료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모작이 가능한 밀과 보리의 재배면적을 확대해 왔지만, 우량종자와 비료, 농약, 농기계가 부족하고 관개시설도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재배 경험과 기술이 지역별로 다른 것도 안정적인 생산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실제로 데일리NK가 위성사진을 활용해 평양시 형제산구역과 황해남도 신천군, 평안남도 문덕군의 밀·보리 재배지를 표본 분석한 결과 지역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평양에서는 재배면적이 늘었지만, 신천군과 문덕군에서는 감소했다. 특히 문덕군 표본지의 밀·보리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25% 줄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위성+] 위성으로 본 北 밀·보리 작황…평양 늘고 황남·평남 줄어) 이는 중앙의 정책적 지시만으로 밀 생산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콩이 부족한 상황에서 밀이나 옥수수를 장류의 대체 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조건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생산 목표와 실제 원료 공급 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설비와 계획부터 확대한다는 데 있다. 밀된장을 생산한다고 선전해 놓고 실제 상점에는 옥수수된장을 내놓는다면 주민들로서는 정책을 신뢰하기 어렵다.

원료가 부족해 옥수수된장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면 원료와 성분을 정확히 표시하고, 제품의 가격과 품질도 그에 맞게 정해야 한다. 주민들의 실제 평가를 생산에 반영하고 식료품공장이 확보할 수 있는 원료의 양에 맞춰 현실적인 생산계획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북한의 밀·보리 생산량은 아직 쌀과 옥수수에 비해 매우 적다. FAO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밀과 보리를 비롯한 북한의 겨울·봄철 곡물은 전체 연간 작물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주민의 주식을 밀가루 음식 중심으로 바꾸고, 동시에 된장과 간장, 빵, 국수 등 각종 가공식품의 원료까지 국내 생산으로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

밀과 보리의 재배면적만 늘린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량종자 보급과 토양 개선, 비료·농약 공급, 농업기계화, 관개시설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수확한 곡물을 건조·보관하고 밀가루와 식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시설과 전력도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북한이 쌀과 밀가루 중심의 식생활을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려면 국내 증산 정책과 함께 대외 교류와 협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농업용 자재와 우량종자, 농기계, 저장·가공 기술을 외부에서 받아들이고 부족한 식량과 원료를 정상적인 교역을 통해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과 군사 부문에 집중된 자원 배분을 재검토하고 주민 생활과 농업 생산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중국이나 베트남, 라오스 등 주변 국가들이 시장 기능과 대외 교류를 활용해 생산성과 생활 수준을 높여온 경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력갱생은 외부 충격과 위기 속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민의 식생활을 개선하고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밀된장 설비에서 옥수수된장이 생산되는 현실은 설비와 구호보다 원료와 기술, 그리고 현실적인 정책 설계가 먼저라는 점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Previous article“쌀·술·담배 준비해라”…학생 간부 강습에도 세외부담 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