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소년 김일성, 독립만세 외치며 30리길 행진”

▲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발간 ‘근대조선역사’ ⓒDailyNK

남한에서는 매년 3월 1일을 ‘삼일절’이라며 공휴일로 보내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3월 1일이 되면 평양에서 ‘3 ∙ 1 인민봉기 00주년 보고대회’를 진행한다. 중앙의 당, 기관, 근로단체만 참석하고 지방은 별다른 행사를 갖지 않는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중앙의 행사소식을 보도하면서 삼일절을 반미, 반일 투쟁에 선동하는 계기로 삼는다.

북한에서는 3 ∙ 1 운동을 ‘3 ∙ 1 인민봉기’라고 부른다. 3 ∙ 1 운동과 관련한 북한 자료는 ‘김일성 혁명활동’과 역사 교과서, 그리고 조선혁명박물관 등 항일투쟁과 관련한 사적관에 기록되어있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는 “3 ∙ 1 인민봉기는 일제 식민지 통치에 분노한 우리 인민이 총궐기한 거족적인 민족항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3 ∙ 1 운동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 혁명활동’ 교과서와 선전영화 ‘여명’ 등은 3 ∙ 1 운동의 성격을 왜곡하고 있다. 혁명활동 교과서는 3 ∙ 1 운동의 의의와 교훈을 이렇게 짚고 있다. 의의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시발점으로 되었으며 ▲일제식민지 통치에 항거한 우리민족의 ‘독립’정신을 보여주었고 ▲일제식민지통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

그런데 교훈이 상당히 생뚱맞다. 교훈은 ▲노동계급의 수령의 영도를 받지 못한 것이고 ▲봉기를 지도할 수 있는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었다는 것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가들의 무모한 봉기가 실패원인이라고 주장한다.

3 ∙ 1 운동을 김형직이 주도하였다고 선전

북한은 3 ∙ 1 운동을 김일성과 그의 아버지 김형직의 업적으로 연결시킨다. 혁명활동 교과서는 “8살 어리신 수령님께서 시위군중을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만경대에서 보통문까지 30리를 행진하시였다”고 쓰고 있다. 시위과정에 일제의 만행을 목격하고 일제를 타도할 각오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

김형직과 관련해서는, 1917년 10월 김형직의 지도하에 조직된 ‘조선국민회’의 회원들의 지도하에 3 ∙ 1 운동이 전개되었다고 쓰고 있다. 또한 1918년 ‘조선국민회’ 사건으로 김형직이 체포되어 시위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감옥에서 3 ∙ 1 운동의 실패원인을 분석하면서 민족주의 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 운동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북한에서는 김형직을 ‘우리나라 민족주의 운동에서 공산주의 운동에로의 방향전환의 선구자이신 김형직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교육한다.

한편 3 ∙ 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선언문 하나 읽고 곧바로 투항변절한 사람들’처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3 ∙ 1 운동’이라고 하면 ‘민족대표 33인’의 주도하에 일어난 운동이 아니라 김형직이 주도한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은 줄곧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운다. 남한의 일부 세력도 이에 열렬히 동조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단결하려면 민족의 역사마저 제멋대로 꾸미고 있는 김정일 일가를 비판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한영진 기자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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