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최근의 헌법 개정은 북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취재를 통해 당국의 제도적 선언이 실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연속 추적해 보도합니다. |

평안남도 성천군 지방공업공장에서는 하루 3~4시간 공급되는 전기에 맞춰 기계가 돌아간다. 한 달 중 절반가량은 된장과 간장, 빵, 음료, 비누, 옷 등을 생산한다. 데일리NK의 심층 취재 결과 같은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건설된 숙천군 지방공업공장의 풍경은 달랐다. 하루 1~2시간 전기가 들어오면 사정이 좋은 날로 여겨진다고 한다. 원료가 떨어지고 기계 부품도 부족해 생산할 일이 없는 노동자들은 공장 부업농장으로 향한다.
모두 북한이 지방발전 정책 첫해 성과로 내세운 공장들이지만 준공 후 1년여가 지난 현재 가동 실태는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에 “성천군에서는 2024년 12월 준공된 식료품공장을 비롯해 일용품공장과 옷공장 등이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목재가공 공정은 설비 설치가 늦어 한 달 정도 뒤에 정상 생산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공장에서는 된장·간장·기름 등 기초식품과 밤졸임, 빵, 음료를 생산한다. 치약·칫솔·비누와 옷, 가구 등도 만들어진다. 특히 밤 가공은 성천군의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지방발전 정책이 내세우는 ‘자립’ 모델에 비교적 부합한다. 성천밤은 오래전부터 이름난 특산물로, 북한 당국은 최근에는 밤 재배와 가공산업을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소식통 추산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공장이 가동된 날은 약 15일, 하루 평균 생산 시간은 4시간 정도다. 하루 3~4시간 전기가 공급돼 현재 생산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원자재 부족으로 생산이 중단될 때가 있다고 한다. 성천군에는 수력발전소를 비롯해 가구·섬유·화학·기계 등 비교적 다양한 산업시설이 확인된다. 이것이 현재의 전력 공급 차이를 직접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숙천군보다 산업 운영 기반이 상대적으로 다양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성천군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2월 정책의 첫 착공식에 참석하고 같은 해 12월 준공식까지 직접 챙긴 시범 지역이다. 중앙의 투자와 행정력이 다른 지역보다 집중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식료품공장에서는 기존 장류공장과 식료공장 출신을 중심으로 약 60명이 일한다고 한다. 월급은 북한 돈 3만 5000~4만 5000원 정도로, 한두 달 늦게 지급될 때도 있다. 명절에는 쌀이나 옥수수, 공장 생산품도 일부 공급된다.
하지만 이 월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여전한 문제다. 데일리NK의 9월 13일 시장 물가 조사에서 평양의 쌀 1kg 가격은 4만 1100원, 혜산은 4만 4100원이었다. 최근 가격이 소폭 하락했지만 성천군 공장 노동자의 한 달 월급과 쌀 1kg 가격이 사실상 비슷한 수준이다. 공장 생산품은 군내 상점에서 판매된다. 가격은 대체로 시장 상품보다 낮지만 품질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다. 일부는 중국산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가격이나 품질 경쟁력이 떨어져 주민들이 시장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국가 상업망을 통한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실제 성천군에서는 올해 3월 군당이 지방공업공장 생산품의 장마당 유출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국가 상점을 통한 유통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공장 가동뿐 아니라 생산품을 어디서 어떻게 팔 것인가가 지방발전 정책의 또 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국가 생산 물자의 장마당 유출 막아라…성천군당 살벌 경고)
다른 지역에서는 공식 상업망만으로 판매 수입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8·3벌이’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 데일리NK는 지난 4월 구장군과 운산군에서 노동자들이 공장 생산품을 직접 넘겨받아 시장에 판매하고 정해진 돈을 공장에 바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새로운 형태의 ‘8·3벌이’ 확산…노동자가 공장 생산품 직접 유통)
공장은 현금을 확보하고 노동자는 판매 차익을 얻는 방식이지만, 노동자들에게 생산품 판매 책임까지 떠넘긴다는 불만도 나온다. 공장을 지어 생산하더라도 안정적인 판로와 운영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시장과 노동자 개인의 돈벌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성천군도 중앙의 원료 지원이 줄어든 올해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군은 특산물인 밤과 담뱃잎을 판매해 원료 구매 자금을 마련하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해 중앙에 다시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지난해에는 시범 단위라 주민들도 확실히 좋아졌다고 느꼈다”면서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다시 도루메기(도루묵)가 된 기분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쌀 고장’ 숙천의 역설…곡창지대인데 공장 원료는 부족
숙천군에는 식료품공장과 일용품공장, 옷공장 등이 건설됐으며 수산물가공품과 학용품 생산공정도 마련됐다. 2025년 1월 준공됐지만 실제 생산은 4월 15일(김일성 생일) 명절 공급품을 마련하기 위한 같은 해 3월 말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여기서 숙천군은 평안남도 서부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벼농사와 과수업이 발달해 쌀과 과일을 가공산업으로 연결하기에 유리한 지역으로 평가돼 왔다. 지방발전 정책의 관점에서는 농업 생산을 식료공업으로 이어 주민들에게 가공식품을 공급하는 전형적인 ‘농업-공업 연계형’ 지역인 셈이다.
그러나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는 사실이 곧 지방공업공장에 원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초기 집중 생산이 끝난 뒤 가동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8월 공장 가동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전기는 하루 평균 1~2시간만 공급된다. 원자재도 대부분 소진됐으며, 일부 설비는 낡은 기계여서 고장이 나도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전언이다.
특히 숙천군은 대표적인 쌀 생산지지만 농장원들조차 쌀밥을 제대로 먹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식료품공장에 곡물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의 식량으로 돌아가야 할 곡물과 공장 가공용 원료가 사실상 경쟁하는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성천군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성천군의 밤과 담배는 판매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거나 가공품 원료로 활용할 여지가 있지만 숙천군의 쌀은 주민들의 생계와 직결된다.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공업 원료로 돌릴 수 있는 여유부터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식통은 숙천군 지방공업공장 노동자를 모두 합해 800명 미만으로 추산했다. 공장이 멈춘 날에도 노동자들은 출근해 부업농장이나 각종 지원 사업에 동원된다. 정해진 월급은 3만~4만 원 정도지만 수개월째 지급되지 않고 있다. 생산품도 지난해에는 군내 상점과 시장에서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숙천군만의 문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데일리NK는 지난 6월 신의주시 학생들이 평안북도 산간 농촌지역에 지원을 나갔다가 상점에 기본적인 식료품과 소비품조차 제대로 진열돼 있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방공업공장의 생산 정상화를 강조하는 선전과 주민들이 실제 접하는 상품 공급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텅 빈 농촌 상점에 충격 받은 도시 학생들 “선전과 현실 간극이…”)
숙천군 공장 제품이 생산되더라도 품질은 시장 상품보다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된장과 간장은 콩보다 밀이나 옥수수 등 다른 곡물을 섞어 맛이 좋지 않아 주민들은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개인이 만든 제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중앙의 검열이나 2월 16일(김정일 생일), 4월 15일 등 주요 명절을 앞두면 원료와 전력이 집중적으로 공급돼 공장이 일시적으로 ‘만가동’에 들어간다. 행사가 끝나면 생산은 다시 급감한다고 한다. 소식통은 “주민들도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새 공장을 짓는 것보다 원료와 전기를 정상적으로 공급하는 게 먼저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홍제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지방공업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원료와 전력, 설비, 인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원료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공장별 가동 여건에도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홍 선임연구위원은 지방공업공장 운영의 가장 큰 제약으로 전력난을 꼽았다. 그는 “북한이 중소형 발전소 건설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력 부족은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면 지방공업공장의 가동시간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매체에는 원료기지 조성이나 전문인력 배치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만, 지방공업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면서 “북한 당국도 전력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안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헌법에는 ‘지방 자립’…출발 조건 따라 또 다른 격차
북한은 2026년 개정 헌법 제26조에 시·군을 자립적이고 다각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지방발전 정책을 국가 운영의 장기 원칙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2021년 제정한 시군발전법에 규정된 지방발전의 기본 방향을 헌법에도 명시해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성천군과 숙천군의 사례는 공장 건설과 지속 가능한 생산은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성천군은 밤·담배 등 현금화할 수 있는 특산물과 기존 산업 기반에 중앙의 집중 지원까지 더해져 제한적으로나마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앙 지원이 줄자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숙천군은 농업 생산기반 자체는 풍부하지만 쌀과 같은 주요 원료가 주민들의 식량과 직결돼 있고 전력·설비 문제까지 겹치면서 공장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즉 ‘지역에 자원이 있느냐’보다 그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장에 투입하고,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뒤 다시 원료 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공장이 돌아가는 성천군에서도 노동자의 월급은 시장 쌀 1kg 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노동자가 공장 생산품의 판매까지 떠맡고 있다. 공장의 제한적인 가동이 곧바로 안정적인 일자리나 주민생활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셈이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외부에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기초 생활필수품 생산은 주민생활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지방공업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주민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품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지방공업공장이 확대되면 생활필수품 공급 여건은 다소 나아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기본적인 생활 수요를 충족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결국 현재 나타나는 변화는 평양과 지방의 격차가 일률적으로 좁혀지는 모습이라기보다, 중앙의 관심과 지원, 자체 산업기반과 원료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지방 내부에서도 새로운 격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성천군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기계가 돌아가지만 숙천군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 대신 부업농장으로 향하고 있다. 두 지역의 엇갈린 풍경은 지방발전의 성패가 새 공장의 숫자나 준공식의 규모가 아니라, 준공식이 끝난 뒤에도 원료와 전력이 들어오고 상품이 팔리며 노동자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