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판매소 현주소①] 예년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되곤 있지만…

<편집자주>
북한 시장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 속에서 당국이 식량 가격 안정화를 목적으로 운영 중인 ‘양곡판매소’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양곡판매소는 과연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주민들의 식량 부담을 덜어주고 있을까요? 데일리NK는 평양과 양강도 혜산시 양곡판매소의 공급 및 운영 실태를 취재하고, 실질적인 체감 효과에 대한 주민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국가 식량 공급망의 현주소를 기획 시리즈로 집중 조명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3년 1월 25일 ‘서로 돕고 이끄는 우리 사회의 미풍을 더 활짝 꽃피워나가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 돕고 위해주는 덕과 정의 힘으로 오늘의 난관을 뚫고나가려는 것은 우리 인민의 가슴 속에 굳게 자리잡은 드팀없는 신조이고 열렬한 지향”이라고 강조하며 한 양곡판매소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내 양곡판매소의 운영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양곡판매소에서 판매되는 쌀이 시장 쌀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여전히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리NK의 취재에 따르면, 평양과 양강도 혜산시에 위치한 양곡판매소는 곡물을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 판매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한 달에 두 번 판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북한 당국은 양곡판매소와 양곡판매소 분국을 분리 운영하고 있다. 양곡판매소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문을 열고 있는데, 그렇다고 매일 곡물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곡물 판매 시기가 인민반 회람을 통해 주민들에게 안내되며, 월 초순이나 중순, 또는 하순 정해진 날짜에 곡물을 살 수 있는 구조다.

양곡판매소 분국은 주민들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식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마련된 분점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체로 인민반 5세대당 하나씩 설치돼 있다. 이런 분국은 곡물 판매가 이뤄지는 시기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양곡판매소는 판매 여력이 있을 경우 비공식적으로 장사꾼들에게 몰래 곡물을 팔기도 하고 정해진 양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팔기도 하지만, 분국에서는 주민 세대별로 정해진 양의 곡물만 판매한다는 게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양곡판매소 곡물 판매 가격 시장보다 저렴지역별 편차도

취재 결과 평양의 한 양곡판매소에서는 지난달 두 번의 곡물 판매가 이뤄졌다. 세대별로 쌀 7㎏, 옥수수(강냉이) 4㎏, 찹쌀 2㎏ 등 총 13㎏의 곡물을 살 수 있었다. 양곡판매소에서는 한 번에 보통 10~15㎏의 곡물이 판매되는데, 한 세대에 15㎏ 이상은 판매되지 않는다고 한다.

평양의 양곡판매소에서 판매된 곡물의 가격은 1㎏당 쌀 3만원(이하 북한 돈), 옥수수는 6500원, 찹쌀은 3만 2000원으로, 지난달 평양 시장의 곡물 가격과 비교하면 쌀은 3.2%, 옥수수는 25.3% 저렴했다.

혜산에 위치한 한 양곡판매소의 경우 지난달 북한 최대 명절인 4·15(김일성 생일)를 계기로 한 번의 곡물 판매가 이뤄졌다. 이때 쌀, 강냉이, 밀가루 각각 3㎏, 7㎏, 2㎏ 등 총 12㎏의 곡물이 판매됐다.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곡물이 판매된 것은 아니었지만 가격은 평소보다 조금 더 저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해당 양곡판매소에서 판매된 곡물의 가격은 1㎏에 쌀 2만 9000원, 옥수수 4500원, 밀가루 1만 5000원이었다. 본보가 실시한 북한 시장 물가 조사에서 지난달 12일 혜산 시장의 쌀 가격이 3만 1500원, 옥수수가 98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양곡판매소 판매 가격이 시장보다 쌀은 7.9%, 옥수수는 54.1% 저렴했던 셈이다.

다만 시장에서도 곡물의 품질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매겨지는 만큼, 질이 좋지 않은 곡물을 기준으로 하면 시장 가격과 양곡판매소 가격의 차이는 더 작았을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 주민들은 양곡판매소 가격이 시장보다 1000~2000원 가량 낮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 시장에서 쌀 가격이 3만원대, 옥수수 가격이 9000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옥수수는 양곡판매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면, 쌀은 시장 가격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양곡판매소의 곡물 판매 시기와 판매량, 가격 등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곡물 수급이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 이뤄지는 구조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양곡판매소를 관리하는 인민위원회 양정부의 수급 능력에 따라 확보하는 곡물의 양이 다른 것이 양곡판매소별 판매 물량과 가격 차이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내화 가치 하락에 양곡판매소도 외화 결제 용인품질 불만은 여전

눈여겨볼 점은 일부 양곡판매소에서 외화 결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매자가 외화 결제를 원할 경우 달러나 위안으로 결제할 수 있으며, 외화 결제 가격은 그날의 시장 환율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 환율이 빠르게 오르고 내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내화로 곡물을 판매하는 것이 불리해지자, 양곡판매소에서도 외화 결제를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내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국영상점이나 양곡판매소에서도 외화 결제를 선호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양곡판매소에서 판매되는 곡물의 질은 시장과 비교할 때 여전히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쌀에 돌 같은 이물질이 섞여 있기도 하고 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곰팡이가 핀 경우도 있어, 실제 섭취 가능한 양은 구매한 양보다 적다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말이다.

결국 양곡판매소 운영이 예년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판매 물량이 제한적이고 품질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아 주민들의 식량 부담을 근본적으로 덜어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시장 쌀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양곡판매소의 쌀 가격이 시장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데다 공급 시기와 판매 조건 역시 지역별 편차가 커 주민들의 실질적인 체감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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