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 지운 새 교과서·지도에 한마디씩 한 교사들, 결국…

교육절 당일 술 마시고 한 발언들 문제시돼 보위부 불려 가…주민들 "민족을 어찌 외국이라 부르나"

정권수립일인 9·9절을 맞아 북한 국가 기관들에 새로 배포된 지도. 기존과 달리 북한만 그려져 있는 반쪽 지도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진=데일리NK

북한 평안북도 곽산군의 한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교사들이 교육절(9월 5일) 당일 술을 먹고 ‘적대적 2국가론’과 관련한 당국의 방침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표했다가 보위부에 불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데일리NK 평안북도 소식통은 “곽산군의 한 고급중학교 교원들이 지난 5일 교육절을 맞아 체육대회로 흥성이는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고 새 교재에 민족이나 통일에 관한 용어가 모두 사라진 것이나 새 지도에 남조선(남한)이 사라진 것에 욱하는 발언을 했다가 결국 보위부에 불려가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5일 교육절 당일 해당 학교에서는 교사들과 학생들, 학부모들까지 참가한 체육대회가 열려 떠들썩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이날 학부모들은 저마다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 담임교사들에게 대접했는데, 오후 3시에 행사가 끝난 후 일부 교사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 학부모들이 해온 남은 음식과 술을 먹으며 잡담을 나눴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흥겨운 술자리에서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새로 나온 교과서와 지도로 옮겨졌다.

그 자리에 있던 교사들은 새로 나온 교과서에 ‘한민족’, ‘한겨레’라는 용어가 모두 삭제되고, 문제풀이집에서도 민족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빠진 것을 언급하면서 “이것은 김일성 대원수님이 내세우신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과 평화통일 유훈을 사실상 집어치운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어떤 교사들은 “민족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것이냐”,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을 지우는 교육을 시킨다면 교원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까지 하며 울컥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교사들은 한국을 회색 처리한 반쪽짜리 지도가 배포되고, 기존 지도를 모두 회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에 참혹한 심정을 드러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모든 국가 기관에 ‘반쪽 지도’ 배포…한국은 회색 처리돼)

실제 교사들은 “과거에는 조선지도를 통해 남조선 지역까지 함께 배우며 학생들에게 경기도, 충청도 등 남쪽 행정구역을 설명했는데, 이대로 가면 몇십 년 뒤 후대들은 남조선의 지명조차 모르게 될 것”이라며 저마다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6일 당시 술자리에 있었던 교원 1명이 스스로 부교장을 찾아가 전날 한 발언들을 자수하듯 이야기하면서 사건이 돌발적으로 확대됐다.

교사들이 술자리에서 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곧바로 학교 담당 보위원에게 전달됐고, 결국 술자리에 있던 교사 전원이 군(郡) 보위부에 불려 가 추궁을 받게 된 것이다.

보위부에 불려 간 교사들은 하나 같이 “술김에 한 말로 기억이 없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양껏 마셨고, 너무 취해서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보위부 내부에서는 “교원 자격이 없는 이들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으나 술김에 한 말이었다는 것과 함께 문제시된 교사 대부분이 간부 가족이라는 점이 고려돼 결국에는 조용히 마무리됐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 사건은 곽산군 주민 사회에도 다 퍼졌다”며 “주민들은 ‘교원들마저 부끄럽다고 토로하는 정도라는 게 참 암담하다’, ‘같은 민족을 어찌 외국이라고 부르겠나’라고 하면서 맑은 정신에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잡혀가니 술을 마시고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