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파견 北 노동자들의 비극…사고로 사망해도 장례도 없어

[북한 비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파병으로 희생된 군인 영웅 추앙 보며 자괴감 삼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건설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파견 노동자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지난해 8월 말, 러시아 사할린 남부의 한 건설 현장에서 북한 파견 노동자 신모 씨가 벽돌 더미에 깔려 숨졌다. 현장에 있던 동료들이 급히 달려와 벽돌을 치웠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날은 그의 여덟 살 아들의 생일이었다. 고향의 가족은 작은 생일상을 차리고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빌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것은 차가운 유골함뿐이었다.

열흘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또 다른 건설 현장에서 비슷한 비극이 벌어졌다. 북한 파견 노동자 장모 씨가 발판에서 추락해 30여m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 장 씨는 현장에서 숨을 거뒀고, 그의 시신은 서둘러 화장돼 본국으로 보내졌다.

장례식도 영결식도 없었던 장 씨의 화장 비용은 동료들의 임금에서 조금씩 떼어 메워졌다. 동료 노동자들은 충격에 빠졌으나 숨을 고를 겨를조차 없었다. 다시 철근을 들고 같은 현장에 서야 했다.

사망자들은 철저히 지워졌다. 러시아 현지 북한 회사 장부에는 단순 사망으로만 기재됐고, 본국 문서에는 아예 흔적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들처럼.

반면 러시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북한 군인들은 ‘영웅’으로 추앙됐다. 같은 러시아 땅에서 국가를 위해 일하다 맞은 죽음이었지만, 너무나도 극명한 차별 대우는 북한 파견 노동자들의 가슴에 깊은 서러움으로 남게 됐다.

러시아 고용주들은 임금을 지급했지만, 노동자 개인이 손에 쥐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 여권은 회수되고, 임금은 장부 속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다. 이런 현장에서 죽음은 ‘인력 공백’으로만 여겨질 뿐이고 애도나 추모는 허락되지 않는다.

러시아 현지인들조차 이를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최근 북한에서 참전 지휘관과 병사들을 비롯해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표창수여식이 진행됐다는 소식에 한 러시아인은 “전쟁에서 죽은 군인은 영웅이 됐지만, 벽돌 더미에 깔려 죽은 노동자는 장례조차 해주지 않는 인정머리 없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북한 노동자들 속에서도 한탄이 번지고 있다. “국가 외화벌이 계획을 수행하던 중에 죽어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다”는 말이 나왔다.

올해 8월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됐다가 희생된 군인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며 유례없는 대대적 선전에 나섰다. 이에 대해 러시아 현지에 파견된 한 북한 노동자는 “우리 처지에 자괴감이 들지만 그저 목구멍으로 삼킨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일부 파견 노동자들은 잊혀간 동료들의 죽음을 다시금 떠올리며 씁쓸한 현실을 곱씹고 있다.

“전쟁터에서 전사하면 영웅이라 불리지만, 건설 현장에서 국가계획을 수행하다 죽으면 숫자로만 기록된다. 지금, 이 시점에 잊힌 동료의 죽음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