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청년층 사이에서 중국산 미디어 재생 기기 ‘MP8’이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중소기업들이 제작한 MP8은 이전 버전인 MP7보다 외형과 기능 면에서 업그레이드됐으며, 북중 접경 지역을 통해 소량씩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MP8은 단순한 음악·영상 재생기기를 넘어 오디오북, 전자책, 문서 열람 기능까지 탑재된 ‘올인원’ 멀티미디어 기기로 북한 청소년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작지만 세련된 디자인에 마감도 잘 돼 있어 고급 전자기기처럼 보이는 데다 직관적인 UI(User Interface)가 적용돼 편의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어, 청년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랴오닝성 단둥과 지린성 훈춘 등 북한 국경과 인접한 도시들에서 신품과 중고품이 소량 유입돼 북한 내부에 유통되고 있으며, 현재 80~150달러 수준에서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
소식통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공부에 쓰겠다고 하면 MP8을 사주는데, 정부에서도 기기 자체보다는 내용물에 집중하니까 공부용이라는 명분만 확실하면 학생들이 크게 눈치 보지 않고 들고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MP8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검열이나 단속 회피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현지 기업이 북한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만든 기기인 만큼, FM 라디오나 와이파이 기능 등을 탑재돼 있지 않거나 비활성화돼 있어 문제 될 소지가 없다고 한다.
소식통은 “학생들은 학습용 쥐카드(SD카드)와 감상용 쥐카드를 따로 휴대하고 있다”며 “MP8은 공식적으로는 교육용 기기지만 사실상 영화나 음악 감상에 주로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어 학습이나 수학 문제 풀이 같은 것을 보다가도 슬쩍 카드만 바꾸면 영화나 연속극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면서 “기계 자체가 작고 단순해서 들켜도 금방 (SD카드를) 교체하거나 숨기기 좋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콘텐츠 확산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MP3와 MP4를 거쳐 MP7에 MP8까지 북한 내부로 유입되면서 ‘북한 주민 맞춤형 디바이스’를 통한 중국 문화 콘텐츠 침투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중국산 ‘MP7’ 급속 확산…학습기기 탈 쓴 콘텐츠 창구)
다만 한국 영화나 드라마, K-POP 등 한류 콘텐츠 역시 충분히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내 MP8 수요 증가는 외부 콘텐츠를 통제·차단해야 하는 북한 당국에 또 다른 대응 과제가 되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무해한’ 학습용 기기라는 외피를 쓰고 들어온 MP8이 외부 문화 유입의 통로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중국으로서도 자국 문화 확산을 위한 도구가 한국 문화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활용되는 상황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소식통은 “중국에서 만든 기계인데 결과적으로는 우리(북한) 젊은이들이 한국 영화와 한국 노래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MP8 사용을) 막을 방법도 마땅치 않고 통제하기도 쉽지 않아 단속해야 하는 사람들 속만 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