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보위부가 김정일 생일(2월 16일) 당일 동상 참배자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며 뒤늦게 주민들의 동상 참배 여부를 조사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데일리NK 함경북도 소식통에 따르면 청진시 보위부는 김정일 생일 당일 동상 참배를 하지 않은 세대를 가려내기 위해 인민반장들과 협력해 주민들의 지난 16일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4월 15일)이나 김정일 생일을 최대 명절로 기념하며 각 기관과 개인이 지역마다 세워져 있는 김씨 부자 동상이나 사적비에 꽃을 헌화하는 식으로 참배하도록 하고 있다. 동상 참배는 북한 주민들에게 당연한 의무로 여겨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김일성·김정일 생일에 동상 참배를 하지 않는 주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소식통은 “원래 매년 2·16이면 점심 때까지 동상 앞에 사람들이 몰려 북적였는데, 요 몇 년 사이에는 오전 10시에 가도 사람이 없다”며 “그만큼 동상에 인사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이렇게 동상 참배를 꺼리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동상 참배에 필요한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마련하는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동상에 인사 나갈 때마다 빈손으로 가는 것은 체면 없는 짓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작은 꽃다발이라도 사려면 쌀 500g 살 돈이 드니 아예 동상 인사를 안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말단 당 간부들은 주민들의 어려운 주머니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빈손이라도 좋으니 동상 인사에 꼭 나오라”고 당부하지만 동상 참배를 하러 가면서 꽃다발 하나 들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꽃다발을 마련하기도 부담스러운 주민들은 동상 참배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소식통의 얘기다.
최고지도자의 생일이 아니더라도 큰 정치적 계기가 있을 때마다 해야 하는 동상 참배에 주민들의 피로감이 상당한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소식통은 “기업소에서도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에서도 수시로 명목을 만들어서 동상 인사를 하게 하고 꽃다발 비용을 내게 하니 사람들이 각자 해야 하는 동상 인사는 슬쩍 빠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인민반장에게 꽃다발만 전달하고 동상 참배는 하지 않는 세대도 늘고 있다고 한다. 먹고살기도 바쁜 마당에 직접 동상에 찾아가 참배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보위부가 직접 올해 김정일 생일 당일 주민들의 동상 참배 여부를 조사하고 나서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청진시 신암구역의 한 주민은 “반(反)간첩투쟁도 아니고 동상 인사에 빠진 것까지 보위원이 캐묻고 있으니 분위기가 살벌하다”면서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는 전언이다.
이밖에 또 다른 주민은 “과거에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행사에 참여했으나 이제는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동상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해서라도 동상 인사를 통해 충성도를 높이려는 것 아니겠냐”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소식통은 “주민 대부분은 보위부의 이번 조사를 통해 충성심 부족이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처벌받을 것에 대해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 눈치”라며 “오히려 이렇게까지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국가가 안쓰럽게 느껴진다는 반응까지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