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

올해 5월 ‘권리 보호’ 지시가 하달된 이후 중국 수산물 가공공장에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이 일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후 감시 체계 강화, 열악한 근로조건, 그리고 구조적 억압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파견 노동자 인권 침해 지적에 北 “권리 보호 신경 쓰라””)
이는 본지가 대북 소식통을 통해 접촉한 실제 북한 관리자·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비영리 탐사보도 단체 ‘불법 바다 프로젝트’(Outlaw Ocean Project)가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북한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 유린 사태를 폭로한 지난 2월 말 뉴욕커 보도가 나온 이후 내놓은 대응책이 단순한 ’선전 수단’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 환경 현장서 큰 변화 없어…안전 교육, 형식에 불과”
데일리NK와 접촉한 중국 수산물 가공공장 북한 관리자(보안상 지역 불특정)는 올해 5월 이후 상부 지시로 각종 근로 환경 개선에 관한 강의를 진행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올해 5월 이후, 상부의 지시로 근로 환경 개선에 대한 강의가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가 말하는 ‘큰 변화 없음’의 대표적 사례는 상급 간부에 의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노동 강도’다. 2024년 5월 이후 점심 휴식이 30분 정도로 유지되는 등 형식적으로는 근로 환경이 개선됐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은 언제든 휴식을 강탈당할 수 있는 구조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점심 오침 시간이나 휴식은 여전히 30분이고 일요일은 가끔 공장 생산량에 따라 근무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북한 노동자(지역은 보안상 미게재)는 실제로 “인권 보호, 치료, 오침 시간, 휴식 관련 지시는 있었으나, 여전히 노동 강도가 높고 개선은 체감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점심 시간은 짧고, 일요일에도 쉬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관리자가 말한 ‘공장 생산량에 따른 근무’가 현장에선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는 점을 시사했다.
관리자와 노동자의 진술 속에서 두드러지는 공통 문제는 ‘야근’이었다.
이 관리자는 “야간작업은 주로 주문 마감일에 발생해 야간전투를 한다. 추가 로임은 제공되지 않고 안 하겠다고 하면 비공식적 불이익이 있습니다. 압력도 있다”고 토로했다.
‘야간전투’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주문이 몰릴 때면 밤샘작업도 불사해야 하는 분위기다. 노동자 또한 이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주문이 많으면 응당 야간 작업이 이어진다. 추가 로임(급여)은 없고, 거절하면 비판대상이 되고 욕을 먹거나 질책을 받는다.”
노동자가 전한 실제 상황은 더 구체적이다. 굳이 거절의 의사를 비치지 않아도, 병에 걸리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서 밤샘 근무가 어려움을 호소하면 즉각 ‘비판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다른 동료들에게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해, 누가 쉽게 항의하거나 시정을 요구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주야를 막론하고 공장라인을 돌리는 동안, 기본적인 ‘안전’은 지켜질까. 그러나 관리자는 “안전 교육은 형식적이다. 장갑, 동피복 등 보호 장비는 부족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장 차원의 안전 대책이 얼마나 취약한지 솔직히 인정한 셈이다.
노동자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장비가 낡고 교육도 형식적이다. 12월 초에 기계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부상자는 없었지만, 결국 언제든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시사된다. 이런 위험요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근로 환경 개선’이라는 말은 체감하기 어려운 허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성적 괴롭힘 은밀하게 이뤄질 가능성 여전…이탈 막으려 화장실도 감시”
이번 취재에서 부각된 또 하나의 문제는 성적 괴롭힘이나 ‘불쾌한 언행’에 관한 부분이다. 이 관리자는 “현재 이런 일(성적 문제)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제가 일어나거나 간혹 중국 직원들이 말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공개적인 추행이나 성적 발언은 줄었지만, 은밀하게 벌어지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동자 역시 “예전보다 줄어들었지만 특정 중국 직원이 여전히 여성 동료를 불쾌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하려 해도 신소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게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한 관리자 증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신소 규정과 지침은 있음. 실제로 문제 제기에 따른 조치는 거의 없음.”
문제를 제기해봐도 별다른 후속 조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노동자가 전한 사례는 더 적나라하다.
“문제를 제기하려고 생각하고 옆에 사람과 토의한 사람은 있었지만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는 오히려 조용히 넘어가라고 권유받고 돈을 더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복잡하게 살지말고 조용히 살다가 귀국해서 서로 모르는 사이로 헤어지고 돈만 벌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상부의 조용한 권고 받는다.”
결국 ‘조용히 넘어가라’는 회유나 압력이 작동함으로써,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공식 통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현실이 드러난다.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충격적인 대목은 ‘감시 수준’이다. 관리자 스스로도 “감시는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인지 도주는 요새 한두 달 새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상 이탈 시도 자체가 막혀 있음을 시사하는데, 왜 그런지는 아래 발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감독 방식은 더 정련화(정밀)해졌으며 CCTV가 구석구석 늘어나서 전자 감시가 강화됐다.”
노동자는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실상을 증언했다.
“CCTV 더 설치한 것 우리도 아는데 노동자들에게 정식 포치한 적도 알려준 적도 없었다. 관리자 순찰이 늘어 더욱 부담스럽고 위생실(화장실) 창문을 들여다 볼 때도 있다. 그 안에서 무슨 글을 적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5분 이상 안 나오면 누구를 시켜서 문을 두드리게 한다.”
화장실마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5분 이상 안 나오면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니, 사실상 사적 공간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죽었소 하고 몇 년 참다 들어간다’는 게 노동자들의 인식…개선 기대 낮아”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을 노동자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관리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적으로 개선 기대는 낮다. 하급이 상급에게 그 어떤 이유로도 현재 상태를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현실이다. ‘죽었소’ 하고 몇 년 참다 들어가면 이꼴 저꼴 안 본다는 입장으로 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는데, 솔직히 우리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주모자나 선동분자만 제거하거나 입막으면 된다. 특히 친척 중에 간부가 있거나 귀국 후 신소 가능한 인맥을 가진 대상들을 잘 관리하면 된다.”
모두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몇 년만 더 참으면 결국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의 체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도 비슷한 인식을 드러낸다.
“변화는 바라지도 생각지도 기대하지 않는다. 조국(북한 당국)의 승인 없이 여기 관리자들이 제맘대로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러면 국가계획분 외화과제를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해 노동자들도 관리자들도 다 서로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번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답변을 종합해보면 감시는 더욱 정교해졌고 근로 환경 개선 지시는 형식적인 데 그치고 있으며, 신소 제도마저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관리자와 노동자 모두 “큰 변화는 없고, 개선 기대도 낮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실상 같은 의견을 공유한다.
특히, 탈출 시도를 엄두 내기 힘들 정도로 전자 감시망이 깔리고, 야근과 열악한 작업장 환경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조용히 넘어가라는 권유”가 우선한다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나 내부 성토만으로는 바꾸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감시에 갇힌 인권이 그냥 묻히지 않게 하는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와 다양한 인권단체, 언론이 북한 노동자들의 실제 증언을 수집·검증하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