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양정법에 판매 규정 세분화…식량 판매에 대한 통제력↑

양곡판매소 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초점…전문가 “국가의 양곡 관리 통제력 극대화하려는 시도”

량정법 / 사진=데일리NK

북한 당국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곡물 판매와 유통 기능을 국가의 통제 안으로 편입시키는데 초점을 두고 법을 지속적으로 개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년 전 개정된 ‘량정법’(이하 양정법)은 양곡판매소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국가에 의한 곡물 판매 권한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22년 12월 6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145호로 개정된 양정법은 총 6장 61조로 구성돼 직전 법안(6장 57조)보다 조항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당국은 2022년 개정법 제1장 제1조 양정법의 사명에 대한 규정에서 “양곡 수매와 보관, 가공, 공급, 판매, 소비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양정사업을 발전시키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다그치고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직전법과 비교할 때 새롭게 신설된 부분은 ‘판매’를 언급한 점이다. 해당 개정의 목적이 양곡판매소의 기능을 적법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이뤄졌음을 방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10조 양곡수매 조직 부분에서도 당국은 국가의 통제를 세분화했다. 직전법에는 “중앙농업지도기관과 지방농업지도기관, 양정기업소는 조직사업을 짜고 들어 양곡을 제때에 수매 받아야 한다”고 돼 있지만, 2022년 개정법에는 “가을걷이와 탈곡, 건조, 포장, 수송을 빈틈없이 조직 전개하여 양곡을 제때에 수매 받아야 한다”고 수정했다.

이에 대해 황현욱 데일리NK AND센터 책임연구원은 “2022년에 개정된 법은 이전보다 수매에 있어 구체적인 단계를 명시해 수매 과정을 세분화하고 있다”며 “‘빈틈없이 조직 전개하여’라는 표현을 추가해 체계적인 업무 수행을 강조했는데, 이는 결국 중앙통제력이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양곡 공정 과정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부분을 법으로 규정한 부분도 눈에 띈다. 기존법 제32조에는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양곡 가공 공정과 설비를 개조해 가공 손실을 없애야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2022년 개정된 법 제32조는 “양곡가공기업소를 ‘위생문화적으로 꾸리며’ 양곡 가공공정을 ‘현대화하여’ 양곡의 가공 손실을 없앤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황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위생과 문화적 관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명시하고 있다”며 “양곡의 위생, 안전성, 현대화 등을 높여 품질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 복수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전국의 북한 양곡 가공 기관들은 양곡 분류나 포장 과정을 기계화하고 또한 이에 대한 위생 검열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평양 소식통은 “이번 연말 총화에서 각 양곡기업소들의 양곡 가공 과정 기계화 비율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23년 1월 25일 게재한 한 양곡판매소 사진. /사진=노동신문·뉴스1

특히 북한 당국은 개정법 제43~44조를 통해 양곡의 판매 방법을 법적으로 구체화했다.

제43조에서는 “노동자, 사무원의 식량은 노동의 힘든 정도와 직정, 대상에 따라 공급, 판매 기준량과 곡종을 정하여 공급, 판매한다. 이 경우 식량을 정해진 공급, 판매기준량, 곡종과 다르게 공급, 판매하거나 2중으로 공급,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 판매 대상의 등록과 식량의 공급·판매를 구체화한 제44조에서는 “판매분 식량을 철저히 가공하여 수요자에게 순별, 월별로 판매해주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직전법에는 없던 내용으로 한정적인 양곡량을 판매하는 데 있어서 판매 과정을 체계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황 책임연구원도 “기존 2021년도 법령에는 공급대상의 등록으로만 돼 있었다면 2022년 개정법은 식량 공급, 판매 대상의 등록과 식량의 공급, 판매로 확장됐다”며 “특히 순별, 월별로 판매한다는 구체적인 판매 방식을 명시하여 식량 유통의 효율성과 체계화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보인다”고 꼬집었다.

북한 당국은 양곡 수매와 판매에 있어서 자율적 판매를 규정함으로써 양곡판매소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개정법 제45조에 “양곡판매소는 여유 양곡의 구입과 판매사업을 정해진대로 하여야 한다”고 새롭게 규정한 것은 잉여 양곡에 대한 자율적 운영을 인정하고 동시에 잉여분에 대한 국가 통제력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2022년 개정 양정법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제6장 지도통제와 관련된 부분이다. 직전법에는 처벌 관련 규정이 제56조에만 명시돼 있었던 것과 달리 개정법에는 제56조부터 제60조까지 처벌 내용이 세세하게 규정됐다.

구체적으로 제57조는 “양곡을 가지고 암거래 또는 밀주 행위를 하였을 경우 기관, 기업소, 단체에 100~150만원, 공민에게 10만원”, “양곡을 국가양정체계 안에서 유통시키지 않았을 경우 기관, 기업소, 단체에 100~150만원” 등의 벌금 처벌을 한다고 명시했다.

또 제58조에서는 “감독 통제기관이 시정할 것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함을 시정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의 경영활동을 중지시킨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폐업시킨다”고 규정해 양곡판매 기관에 일부 자율성을 허용하면서도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경우 활동을 중지시키도록 했다.

여기서 ‘폐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양곡판매 기관이 당국의 통제하에 있는 공공기관이면서도 판매의 기능을 주로 하는 기업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황 책임연구원은 “벌금, 몰수, 경영 활동 중지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처벌 방식이 추가됐다”며 “이는 국가의 양곡 관리 통제력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