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와 관련한 강연회를 실시하고 있다고 소식통이 전해왔다.
25일 데일리NK 평양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15일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한 이후 당 조직은 물론 청년동맹(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직맹(조선직업총동맹),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등 근로단체 조직에서도 이와 관련한 강연회를 실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강연자료를 통해 경의선·동해선 폭파 장면이 사진을 다시 한번 주민들에게 공개하면서 ”이는 적들의 군사적 도발 책동으로부터 우리 인민을 보호하고 조선(북한)의 주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평양의 한 청년동맹 조직에서 실시된 강연회에서 강연자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인식해 왔던 ‘한민족’, ‘통일’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며 “한국과의 래왕(왕래)이나 교류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강연회에서는 “한국은 한민족이나 통일의 상대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점령해야 할 땅”, “우리의 모든 군사적 조치는 합법적”이라는 등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유발하고, 대남 도발을 정당화하는 발언도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헌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최근 진행된 강연회에서 강연자가 ‘대한민국 점령’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개정 헌법을 근거로 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앞서 17일 관영 매체를 통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사실을 대내외에 보도하면서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강연회에 대한 내부의 반응은 싸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당 간부들은 “어떻게 수령님(김일성),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을 부정할 수 있느냐”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절대적인 법으로 인식되는 선대 지도자의 유훈을 사실상 폐기한 데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전언이다.
일반 주민들도 “조국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통일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하느냐”, “민족이 아니라고 한다고 5000년의 유구한 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겠나”라는 등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은 “사람들은 한국을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에 대해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뒤에서는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비난한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내부 주민 대상 강연회에서도 헌법 개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의 반향을 고려해 공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이 이번 헌법 개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공개에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 노선을 달성한다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통치의 근간으로 내세워왔고 이를 명목으로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기 때문에 적대적 두 국가 조치는 북한 주민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 연구위원은 “일반 주민들과 엘리트 계층이 적대적 두 국가 조치나 통일, 민족 개념 삭제와 관련한 조치를 점진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조직별 강연회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조치”라고 분석했다.